백만번쯤 곱씹다
곱씹다.
곱씹다’는 같은 생각이나 감정을 반복적으로 되새기는 심리 현상을 가리키는 용어로 쓰입니다. 특히 부정적 경험을 끊임없이 떠올리는 ‘반추(rumination)’를 설명할 때 “곱씹는 사고”라는 표현이 사용됩니다
나는 지금도 그 곱씹기의 한가운데에 있다.
거의 50번째 면접이다.
이제는 숫자조차 감정을 자극하지 않는다.
내일은 하필, 같은 날 두 개의 면접 일정이 겹쳤다.
1번 면접은 14명이 지원했다. 경쟁률은 14:1.
정규직이고, 살던 지역이라 다니기도 쉽다.
급여도 어느 정도 보장될 가능성이 있다.
해왔던 분야와 비슷하지만
다른 역동성을 요구하기에
어쩐지 나에게는 조금 두려운 영역이었다.
그래서 가능성을 낮게 두었다.
2번 면접은 경쟁률을 알 수 없었다. 개별 통보를 받았다.
기간제이고, 타지역이라 다니기 힘들다.
급여는 낮고, 사람들이 선호하지 않는 자리다.
하지만 요즘 내가 계속 관심을 두고 있던
장기요양 재택지원센터 시범사업이었다.
해본 적은 없지만 해보고 싶은 분야였고,
그래서 가능성을 높게 보았다.
나는 계산을 했다.
가능성, 안정성, 급여, 거리, 체력, 그리고 마음.
그리고 낮에 나는 1번 면접을 포기하고 2번을 선택하겠다고 말했다.
밤이 되자 그 선택을 다시 꺼내 들었다.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결국 GM에게 털어놓았다.
“만약 2번이 되면, 정말 갈 거야?” 그 말 앞에서 멈췄다.
맞는 말이었다.
급여가 낮아서 지난번에도 결국 가지 않았던 자리.
이번에도 결과가 나오면 나는 또 망설이다가 포기할것 같다.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로 1번을 버리고, 2번에 기대를 걸었지만
정작 선택 이후의 나는 그 선택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이번 선택에는 배움에 대한 욕심이 있었다.
급여도 보장되지 않고, 1년을 채우지 못할 수도 있고, 거리도 멀고 체력도 버거울 걸 알면서도
“한번 해보고, 경험하고, 파악하고 내려오고 싶다”는 마음이 가장 크게 작용했다.
하지만..
이 선택은 현실감각 없는 배짱 같고,이곳을 피하고 싶은 회피성 선택인것 같다.
사실 1번 면접을 피한 이유도
가서 말도 제대로 못 하고, 떨어지고, 또다시 나를 자책하며
그 장면을 수십만 번 곱씹을것이기에 내게 상처주고 싶지 않은 회피성(?) 선택이였다.
그 시간이 너무 괴로워서 아예 피하고 싶었다.
근네 나 .. 정말로 많이 보지 않았던가?
그동안 면접을 50번쯤 보았잖아~
그래도 잘 이겨내고 여기 있지않은가?
뭐 한번 더 괴로워진다고 해도 또 씩씩해 질꺼다.
1번 면접을 다녀오는 게 더 나은 선택일것 같다.
꼽씹더라도 다닐 가능성이 높은것
그리고 만약 잘 된다면 잘해 낼 수 있다는걸 누구보다 내가 잘 안다.
선택을 못 받은건 내가 부족하기보다는
나의 실력을 제대로 못알아본 면접관들의 잘못이니
빛나는 나를 너무 몰아세우지 말자
이미 못 간다고 말해버렸기에 내일 다시 연락한다고 해서
상황이 바뀔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안되면 그 또한 운명이니
너무 나를 괴롭히지 말자
이렇게 나는 애써 응원하는 말을 하고 있지만
아까부터 이 생각을 백만 번쯤 곱씹고 있다.
브런치 글을 써야하는데 ..생각에 붙잡혀 꼼짝을 못 했다.
그래서 결국 이 생각을 그냥 글로 쓴다.
나는 이렇게 생각만 하며 낭비한 시간이 도대체 얼마나 많았을까?
혼자 괴로워하고,혼자 아파하고,혼자 그 자리에 머물며
아까운 시간을 수없이 죽여왔다.
글을 쓰니 조금은 숨이 트이고 생각이 정리가 된다.
글이 갖는 치유의 능력을 경험하고 있다.
오늘은 여기까지다.
지금의 나는 이만큼이면 충분하다.
오늘 느낀 감정
고민
막연함
후회
가장 크게 자리한 감정
후회
선택의 순간이 있었고,
나는 결국 하지 않는 쪽을 선택했다.
그때는
어려울 것 같았고,
미리 겁이 나서 한 발 물러난 결정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할 걸 그랬다”는 생각이 올라왔다.
마치 도망친 것 같다는 느낌까지 들어서
후회가 더 커졌다.
내일 다시 이야기해 볼 수 있을지,
이미 늦어버린 건 아닐지 망설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되면 좋고, 안 되면 그게 내 그릇이었겠지”라고
스스로를 설득해 보려 한다.
그럼에도 마음 한쪽에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 후회가 남아 있다.
그때의 나는
어려울 거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한 거야.
그건 도망이 아니라
그 순간의 나로서는 최선의 판단이었을 뿐이야.
그러니 그 선택을 한 나를
지나치게 비난하지 말자.
지금에 와서
“아니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건 내가 그만큼 조금 더 단단해졌다는 증거야.
되돌릴 수 있든 없든,
지금 할 수 있는 행동이 있다면 한 번 더 해보자.
결과가 어떻든
그 또한 내가 선택한 길이니까.
인생에는 수많은 선택이 있었고,
언제나 그 선택은 내 몫이었다.
잘되든, 잘못되든
그 모든 선택을 한 나 자신을 존중해 주자.
그래도 괜찮다.
그러자. 정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