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나의 순간
매우 짧은 순간, 인생의 많은 일들은 이미 결정되어 버린다.
우리는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끊임없이 판단한다.
이른바 thin-slicing,
아주 얇은 순간의 단면으로 결론을 내리는 방식이다.
면접관은 첫 7~30초 안에 지원자에 대한 무의식적 판단을 시작한다고 한다.
어떤 연구에서는 단 0.1초 만에 타인의 신뢰성이나 능력을 판단하기도 한다고 말한다.
인간은 합리적으로 고르는 존재라기보다 환경이 유도하는 방향으로 반응하는 존재에 가깝다.
그래서 매장에서 계획하지 않았던 구매의 60~70%가 즉흥적으로 이루어진다.
이른바 넛지의 결과다.
돌이켜보면, 인생의 방향이 바뀌는 순간은 대개 오래 고민한 끝에 오지 않았다.
숨을 고르기도 전에, 마음이 먼저 기울어지는 아주 짧은 틈.
말을 할지, 삼킬지 , 붙잡을지, 돌아설지, 한 걸음 더 갈지, 멈출지
그 결정은 언제나 설명보다 빠르다.
우리는 이미 그 찰나에 선택했고,
이유는 늘 그 다음에 따라온다.
그래서 인생은 커다란 계획이 아니라
작고 결정적인 찰나들로 조금씩 바뀌어 가는 것이 아닐까?
살아 있다는 사실이 기적처럼 느꼈다.
오래전에 나는 이미 죽었어야 했던 것 같은데
목숨이 아직 붙어 있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왜 그런 생각이 마음 깊숙이 자리 잡게 되었는지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어디서부터였는지, 언제 심어진 생각인지는 흐릿하다.
다만 분명한 건, 숨을 쉬고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라 느껴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이상의 희망을 갖지 않았다.
하루하루 살아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고, 숨을 쉬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저 감사했다.
길을 건너기 위해 서 있었다.
신호를 기다리다, 건너려는 순간—
아빠가 나를 붙잡았다.
그 바로 앞을 커다란 트럭이
1cm도 되지 않는 간격으로 지나갔다.
그 찰나의 순간, 나는 죽을 뻔했다고 기억한다.
그 기억은 지금도 놀라울 만큼 생생하다.
먹고 싶었던 건 아니었다.
아주머니가 앞에서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았고,
초코바가 눈앞에서 나를 불렀다.
찰나의 순간,
나는 그것을 집어 들고 냅다 뛰었다.
두세 발짝도 가지 못해 아주머니가 달려와 나를 붙잡고 호통을 쳤다.
아빠가 알면 혼날 걸 알기에 너무 무서웠다.
나는 집 근처 담벼락 옆에 숨었다.
밤이 완전히 깜깜해질 때까지 그곳에 그대로 있었다.
하늘이 어두워지고 별이 눈앞에서 반짝였고, 너무도 아름다웠다.
그냥 이렇게 있어도 좋다는 생각을 했다.
횃불을 든 사람들이 내 이름을 부르며 다니는 소리가 들렸다.
마을 전체가 나를 찾고 있었다.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친구들과 함께 길을 걷고 있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걷고 있는데, 오토바이를 탄 아저씨가 나를 불렀다.
나는 어떤 자석에 이끌리듯 그를 따라 오토바이 뒷자리에 올라탔다.
바람이 너무 시원했고, 반짝이며 지나가는 나무들이 꿈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다른것들은 기억하지 못했다.
학교에 갔고 친구들은 내가 갑자기 사라져서 걱정했다고 했다.
인신매매 같은 상황은 아니었던 것 같지만,
그때의 선택은 지금에 와서야 너무도 아찔하고 무서운 순간이었음을 알게 된다.
나는 오래도록 그날의 기억이 무엇이었는지 계속 찾고 있다.
길의 끝자락에서 자전거를 타고 친구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찰나의 순간, 작은 바람이 불었다.
부드럽고, 아주 살랑이는 바람.
그 감각은 아직도 생생하다.
나는 균형을 잃고 언덕 위에서 아래 논으로 굴러 떨어졌다.
자전거 발판이 왼쪽 귀를 강타했다.
그 순간까지만 기억난다.
그 다음은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
어떤 남자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찰나의 순간,눈앞에서 반짝 하고 스파크처럼 빛이 튀었다.
나는 그 아이의 주변을 맴돌고,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해댔다
한동안 아파서 입원했다가 퇴원한 그 아이에게
함께하지 못했던 시간이 너무 서운하고 보고 싶어서
괜히 말도안되는 툴툴거리며 쏘아 붙히고 말했던것 같다.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검정색 꽃 모양의 귀걸이를
사 왔다며 건네던 찰나의 순간
그 손이 너무 가여웠다.
그저 그 이유 하나였다.
내 앞에서 엄청난 목소리로 소리를 지르던 사람.
그 앞에서 그를 향해 맞서 되돌려 보내던 또 다른 사람.
찰나의 순간,
그 장면이 가슴속에 남는다.
나를 위해 싸워주는 사람은 그뿐이였다.
둥글레차가 너무도 맛있었다.
‘이렇게 맛있는 둥글레차가 있을까?’
‘여기 오면 많이 마시겠네.’
지극히 단순한,
아주 작은 이유였다.
내가 이직을 선택한 말도 안되는 이유가
단순한 찰나의 순간
단지
그
둥글레차였다.
� 오늘의 감정 세 가지
짜증
화남
괴로움
� 지금 가장 크게 자리 잡은 감정
괴로움
� 왜 이런 기분이 들까?
그 사람이 너무 싫다.
이유를 묻는다면 딱 잘라 말할 수는 없지만, 그냥 싫다.
생각하기도 싫고, 마주하는 것 자체가 버겁다.
� 나에게 건네고 싶은 말
그냥 싫은 감정에도 이유는 있을 거야.
너에게 쌓인 감정이 분명히 존재하겠지.
싫은 사람과 함께 있어야 하는 시간이 얼마나 괴로운지도 알아.
그래서 지금의 나는
어떤 말로도 나를 설득하지 못하겠다.
다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그냥 미안하다.
내 마음이 지금 이래서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