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감은...
예감은
맞을 때도 있고
틀릴 때도 있고.
그래서 더 이상하다.
예감이 맞으면
“역시…” 하면서 씁쓸해지고,
틀리면
“괜히 혼자 상상했네” 하면서 또 스스로를 의심하게 되고.
그래서 예감은
확신도 아니고
착각도 아닌,
애매한 중간지점에 있다.
사실 예감이라는 건
미래를 보는 능력이 아니라
현재의 미세한 변화를 감지하는 감각에 더 가깝다.
말투가 달라졌고
속도가 달라졌고
눈빛이 달라졌고
우리는 그걸 논리로 설명하기 전에
먼저 “느낀다.”
그게 예감이다.
문제는 그 예감 위에
불안이 덧붙는 순간부터다.
예감은 작은 신호인데
불안은 그 신호를 키워서
재난처럼 만들어버린다.
그래서 지금 네 감정은
예감 때문이라기보다 예감 위에 얹힌 불안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또 이렇게 되는 거 아닐까.”
“나는 또 같은 패턴을 겪는 거 아닐까.”
“나는 또 불안한 자리에 서 있는 거 아닐까.”
이 생각이 예감을 증폭시킨다.
이상한 감정인 이유는 반은 직감이고 반은 상상이다.
그래서 더 흔들린다.
근데 한 가지는 확실한건
예감이 맞든 틀리든 내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
누군가의 관심이 이동했다고 해서 내 존재가 줄어드는 건 아니다.
예감은 그 사람의 변화에 대한 신호일 뿐이지
나의 부족함에 대한 판결은 아니다.
지금은 예감을 붙잡고 결론을 내리기보다는
그냥 이렇게 생각해 보자
“아, 내가 지금 불안하구나.”
예감이 이상한 게 아니라
불안한 내가 힘든 거구나...
지금 이 예감, 더 두려운 건
잃을까 봐서 일까?
아니면 또 반복될까 봐서 일까?
어떻게 되든 다 괜찮다.
그게 인생이려니 이제는 그런것들에 익숙해져도 되고
그냥 받아들이려는 초연함을 가졌으면 좋겠다.
내가 어찌 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란걸 잘 알고 있다.
사람의 마음이 변하는건 일도 아니지 않는가
너무 애쓰지 말자
내는 변하지 않았는데
상대가 변했다고 손해보는것같다며
억울해하지도
속상해 하지도 말고
그냥 나 역시 그렇게 초연해 질수 있도록 노력하자
많이 생각하지 말고
우선은 나역시 나를 우선순위에 두고 생각해 보자
그리고 지금 할 수있는 일을 하나씩만 해보자
이렇게 글을 쓰는것 처럼 ..
정리하니 한결 좋아진다 마음이 ..
희안하게
내가 사람을 찾을 때는 사람들이 내 곁에 없고
내가 찾지 않을 때는 사람들이 내 곁에 있다.
어쩌면 사람은 늘 그 자리에 있었는데
달라진 건 사람의 위치가 아니라
내 마음의 그러했을것이다.
내가 외로울 때는 세상이 다 떠난 것 같고
내가 무심해질 때는 세상이 나를 찾는 것 같다.
결국 나는 사람을 보고 있는 게 아니라
내 감정에 따라 세상이 달라진것 뿐이였다
점점 더 미궁 속으로 빠져드는 것 같은 앞날.
이 길이 맞는지, 아닌지도 모르겠고
멈춰야 하는지, 버텨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의논할 곳도 없고
의논한다 한들 결국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거라는 걸 안다.
그리고 그렇게 해놓고는
또 후회하고 또 후회할 것이다.
그게 뻔하다.
너무도 뻔해서 더 안타깝다.
알면서도 고치지 못하는 나 자신이
답답하고, 어리석고, 가끔은 한심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그냥 화가 난다.
나를 이렇게 몰아간 이곳이 억울하고 분하다.
마치 내가 선택하지 않은 싸움판에 억지로 서 있는 느낌이다.
나는 싸우겠다고 한 적이 없는데
이미 싸움은 시작되어 있었고
나는 그 안에 서 있었다.
부정당한 것들,
부당했던 순간들,
설명조차 제대로 듣지 못한 억울함들.
그 모든 것을 다 말하고 싶다.
공론화하고 싶고,
정말이지 공개적으로 모든 사람이 알게 하고 싶다.
내가 얼마나 애썼는지,
내 시간이 어떻게 소모되었는지,
내 노력이 얼마나 당연하게 취급되었는지.
나를 가볍게 본 것들에 대해,
내 시간을 아무렇지 않게 써버린 구조들에 대해
소리치고 싶다.
복수라도 해주고 가고 싶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한다.
그러면 하수라고,
그러면 결국 나만 망가진다고,
지혜롭지 못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지금 나는
지혜고 뭐고 다 싫다.
옳고 그름보다
이 억울함을 그냥 흘려보내야 하는 내가 더 싫다.
그러면서도 또 안다.
감정에 휩쓸려 터뜨리고 나면
결국 후회하는 것도 나라는 걸.
그래서 참고 있다.
조용히 사무실에 나가려 하면서도
속에서는 분노가 끓는다.
티 내지 않으려 애쓰는 내가
오히려 더 화가 난다.
왜 늘 참는 쪽은 나인가?
앞으로 갈 곳도 명확하지 않다.
가게 되더라도 고작 1년.
이렇게 나이는 먹어가는데
늘 계약직을 전전해도 되는 걸까?
도대체 일이라는 건 나에게 무엇일까?
먹고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붙들고 있는
생존의 도구일까?
아니면 언젠가는
나를 증명해 줄 무언가일까?
꿈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현실적이고,
현실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공허하다.
나는 점점 나이를 먹어가는데
나는 나에게 해줄 것이 없다.
안정도, 확신도, “괜찮다”는 말도.
화가 나 있고,
억울해하고,
이렇게라도 글을 쓰고 있다는 건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지금은 초라해 보이고
불안해 보이고
방향도 없어 보이지만
그래도 나는 애쓰고 있다.
무너지지 않으려고,
내가 나를 완전히 포기하지 않으려고.
그래도 나는
애쓰고 있는 사람이다.
� 오늘의 감정 세 가지
불안한 예감, 심심함, 그리고 화남.
� 반짝감정
딱히 없었다. 음.. 집청소를 한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라는 감정?
� 지금 가장 크게 자리 잡은 감정
불안감.
� 왜 그렇게 느꼈는지?
나는 앞으로의 새로운 것들에 대해 두려워하고 있는데
그는 그 두려움에 함께 서 있지 않은 것 같아서 서운하다.
나에 대한 신경도가 떨어진 느낌이고 일일이 설명해 주지 않았다.
무엇을 할꺼고 하고 있고 그리고 그런 얘기들을 말해주지 않았다.
이런 감정은 싫다.
기다리는 사람처럼 보이는 것도 싫고,
괜히 더 매달리는 사람처럼 느껴지는 것도 싫다.
그럴 거라는 걸 알면서도
애쓰고 있는 나도 불안해고 신경쓰이고 하는 나도 속상하다.
� 나에게 건네고 싶은 말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해.
상대의 관심을 붙잡으려 애쓰지 말고
내 하루를 붙잡아.
나는 나의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이다.
불안해도, 서운해도,
나의 인생을 살아야지
매번 그걸 잊으면 안되는거야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어
미래는 불안해 졌고
그리고 그냥 가기도 화가나고
여러감정이 복받쳐오고 있는데
기대고 얘기할때는 없고
혼자가 된 느낌이 더 힘들게 한다는거 알아
근데 말야.. 인생은 늘 혼자였다는거
그거 잊으면 안되는거 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