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람 3

틀린 길

by 꿈꾸는 momo

어느 날 아파트 구석 벤치에 앉아 담배 한 개비 피우는 어떤 아저씨의 어깨와 눈빛에서, 퇴근길 아파트 주차장에서 마주하는 어떤 아저씨의 무표정한 얼굴과 걸음에서, 남편이 떠올라 멈칫했다. 수없이 지나치고 무심하게 생각했던 낯익은 순간들의 기억.

확실히 요 몇 년간 그의 어깨는 무겁게 쳐져 있다. 뭔가 힘 있고 예리하던 그의 눈빛은 어디로 갔을까, 갑자기 측은해 보이는 그의 마흔이 가슴을 찌릿하게 한다. 예전보다 머리숱도 더 적어지고 머리칼도 하얗게 센 것 같다.



내가 다니는 길목에 미리 도착해 낯간지러운 플래카드를 들고 섰던 그, 내가 지독히도 싫어했던 오글거림의 낭만을 실천하던 연애시절의 그가 생각난다. (요즘 한창 애교를 부리는 둥이들의 천진난만한 표정에서 그 사람을 다시 발견하는 중이다.) 그러다가도 어떤 주제에서는 세상 진지해지던 그였다. 밤을 꼬박 새워 수다를 떨 만큼 평소의 과묵함과는 상반된 수다쟁이가 되기도 했다. 때론 오만하다 생각할 만큼 불편했던 그의 질문들이 우리 인연의 시작이기도 했다. 그의 질문은 내 삶과 사고의 우물에 파장을 만들었다. 그의 지적이 불편함을 넘어 궁금해졌고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알아가다 하나가 되었다. 서로의 다름이 새로움이 되고 이해함이 기쁨이 되었던 때였다.


결혼 전 엄마는 내게 딱 한 가지를 당부하셨다.


'남편이 틀린 길로 가더라도 비난하지 말고 참고 기다려주든지, 같이 갔다가 같이 돌아오너라.'


그게 대단한 말인 줄 알았다. 아니, 그렇게 살아온 엄마는 정말 대단했다. 하지만 숙명처럼 그렇게 자신을 희생하고 헌신하며 살아온 엄마의 시대와 지금은 달랐다. 엄마를 보면 지금도 존경해 마지않지만 아빠가 없는 엄마를 생각하면 모든 게 다 무너질까 봐, 엄마가 사라질까 봐 살짝 겁이 나기도 한다. 엄마는 한 달 휴대폰요금이 1000원을 넘지 않는다.


남편이 '틀린 길'로 간다는 전제가 나의 무의식 속에 있었던 것 같다. 남자는 죽을 때가 되어야 철이 든다, 무모하다, 아들 하나 키우는 거랑 같다. 뭐 이런 식의 말과 같은 맥락으로 그런 남자를 보듬는 내가 한 수 위인 것 같은 알량한 자존심을 세우고 말이다.


정말, 남편은 '틀린 길'을 자주 갔다. 말 그대로 길(road)이거나 삶의 과정이거나... 아니, 정확히 말해서는 '모르는 길'이었다. 모르는 길이 틀린 길은 아니지만 나는 미리 '틀린 길'로 예견하며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그를 바라보는 것이다. 그러다가 정말로 틀린 길이라 확정되는 순간 참아왔던 감정을 내뱉는다. 하지만 그것은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격이었다. 틀린 길이 아니길 바라며 애써 달렸던 자신의 수고를 인정해주지 않는 아내에 대한 서운함. 그것이 틀린 길을 달린 짜증과 함께 배가되어 나에게 되돌아오곤 했다. 당연히 내 감정을 받아줄 거라 생각했던 내게(내 예상이 옳았으니까) 예상치 못한 남편의 반격은 언제나 나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그 길 끝에서 사과를 하는 사람은 결국, 내가 된다. 마음이 너른 사람이라 그런 것도 아니고 더 큰 일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하는 나의 소심하고 안정지향적인 방식일 뿐. 그러고 나서 나는 해소되지 못한 감정을 추스르고자 수많은 이유를 차곡차곡 다시 정리하며 할 말을 찾아낸다. 어떤 날은 잠을 이루지 못하며, 어떤 날은 혼자 눈물을 흘리며... 하지만 정리한 말을 다시 꺼낼 즈음엔 지나간 일로 사람 피곤하게 만드는, 뒤끝 있는 여자로 전락하고야 마는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나의 사람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