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
고흐의 그림을 보러 갔다. 그의 감정이 고스란히 스민 작품들의 색채와 느낌이 그의 삶의 변화들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의 그림을 보며 걷는데 한 사람의 인생 터널을 지나고 있는 기분이었다.
이렇게 관찰자 시점으로 바라보면 한결 수월하게 읽히고 이해되는 듯하지만 정작 그의 삶에 밀착된 사람이 느끼는 '그'란 존재는 더 묵직하고 치열하고 입체적일 것이다. 나에게 남편이, 남편에게 내가 그런 것처럼...
과연 우리는 같은 길을 걸어 인생의 어느 지점에 닿아 있는 것일까. 문득 떠올려지는 색채는 고흐의 그림 마냥 섞이고 뭉개지고 겹쳐지고 강렬했다.
내가 이렇게 그림이나 음악을 감상하며 인생을 사색한다면 남편은 영화나 글에서 그러하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을 개봉하는 날, 남편은 아이들을 재우고 심야로 영화를 관람하고 왔다. 집에 와서는 영화평론가들의 글들을 참조하고 다시 리뷰하며 역시 봉준호다 했다. 아이들의 컨디션과 나의 컨디션에 따라 움직임이 가능한 나는 차일피일 영화 볼 날을 미루다가 드디어 하루를 정했다.
나 내일 기생충 보러 갈라고
그거 자기가 보기 힘들건대?
어떤 영화길래, 또 나의 얕고 부족한 통찰력을 두고 하는 말인가 싶어 살짝 뾰로통했다가 어떤 장면들의 잔인함과 어두움을 이야기함에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랬다. 나는 아직까지도 시각적 폭력과 잔인함을 전체의 부분으로 보지 못한다. 어떤 장면의 잔상이 오래 남아 나를 괴롭히는 것이다. 넓적다리가 떨린다는 말의 의미를 정확히 안다. 성인이 되면서부터 여과 없이 보게 되는 잔인한 장면들은 허벅지가 덜덜 떨리게 한다. 다리에 얼마나 힘이 들어갔는지 상영이 끝나고 일어서면 아픈 무릎 때문에 걸음이 어려웠다.
나의 순진하고 여린 간을 키워야 한다며, 결혼 후 남편은 나를 데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감독의 영화를 보러 갔다. 영화 이름이 '짝패'였던가. 한 편의 무협영화 같던 칼부림의 장면들을 견뎌내고 나온 나는 며칠을 앓았다. 스파이더맨 같은 액션 영화는 얼마든지 즐기겠는데...
취향으로 생각해야 하는 건지 수준으로 생각해야 하는 건지 불편할 때가 있다. 남편의 취향과 수준은 나랑 참 다르다. 하지만 수준이라는 건 높낮이가 있으니 굳이 따지면 내 수준이 떨어지는 것이라 인정해야 하는지, 살아가며 남편들과 부딪히는 일들에는 항상 이 미묘하고 불편한 기류가 끼어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