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책감

너무 미안해하지 말아요

by 꿈꾸는 momo

우리의 죄책감은 어디로부터 오는 것일까. 어쩌면 잘해보려 수고하고 애쓰는 마음과는 다른 결론에 부딪힐 때, 또는 감당하지 못해 미안한 맘으로 떠나보낸 문제가 심각해져서 돌아올 때가 아닐까...


같이 감기를 앓아도 유독 폐렴으로 재빨리 악화되는 둘째, 벌써 세 번째 입원이다. 일찍 병원 진료를 받고 약을 먹고 있었는데도 이러니 어쩔 방도가 없는 거구나 싶어 편하게 입원을 받아들였다. 그리 넓지 않은 거실을 가운데 두고 방들이 갈라지는데 이번에는 어쩐지 할머니들이 많이 보인다. 그래서인지 아이가 칭얼거려 복도를 서성일 때도, 오며 가며 마주칠 때도 한 마디씩 잊지 않고 건네주신다.


아휴 이리 잘 노는데 어제는 왜 그리 울었을꼬


안 듣는 것 같아도, 안 보는 것 같아도 우리 아이가 고집불통으로 울어 하루 종일 업고 밖에서 서성인 걸 아시고 하는 이야기다.


몇 개월이에요?로 시작되는 대화. 아이 키우신 지 오래된 분들은 보통 '몇 살이에요?'라고 묻기 마련인데... 그렇게 이야기를 풀어가다 보면 자연스레 아들 셋, 쌍둥이를 들먹거리게 되어 있고 육아의 고충을 서로 이야기하게 되는 것이다.


키워줘도 나중에 엄마밖에 없지. 그리고 이렇게 아프면 죄책감이 들고 그래요. 내가 좀 더 신경을 못 써서 그런가 미안하고 내 몸이 안 좋을 때는 더 그렇고...


한창 고집이 늘어 돌보기가 힘든 16개월 손자는 할머니 등에서 내리려고 온 몸을 뻗대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내려두면 막무가내로 오가는 아이 뒤로 수액걸이를 들고 따라다니는 할머니는 진땀을 뺀다. 결국은 스마트 폰을 꺼내 유튜브를 여는 할머니...


할머니가 키우면 버릇이 나빠진다, 애한테 못 이겨 결국은 동영상으로 달랜다 라는 말에 어느 정도 동조한 바 있던 나로서는 이렇게 애태우며 돌보는 할머니들 앞에서 약간 부끄러워졌다. 그렇게 단순하게 판단할 일은 아니었다.


결국은 당신 자식의 수고로움을 덜어주고자 노심초사하며 손자를 봐주고 계시는 할머니들은 이 시대의 나의 엄마이자 아빠다. 혹여나 아이에게 해가 될까, 아이를 잘못 키울까 싶어 전전긍긍하는 할머니들은 아이가 아프기라도 하면 오롯이 미안한 마음의 짐을 당신에게 얹어 버리신다.


이 세대야말로 위로는 어른들을 모시고 시집살이를 살며 남편은 바깥일, 자신은 집안일과 자식 뒷바라지에 온 세월을 다 바쳐 사신 분들이 아닌가. 이제 좀 수월해질 법한 세월에 어쩔 수 없이 손자들을 떠안게 되는 이 분들의 삶은 희생과 수고로 점철된 삶인 것 같다.


아기랑 손잡고 싶단 말이야. 밥 같이 먹을 거야.


다섯 살 손녀가 우리 아들 손을 잡고 싶어 안달이 나 할머니에게 떼를 쓰기 시작했다. 무릎이 좋지 않아 보이는 할머니는 혼자서 일곱 살 손자와 다섯 살 손녀를 돌보고 계셨다. 할머니는 손녀에게 차근차근 안 되는 이유를 설명하며 달래 보지만 시작된 고집은 꺾어질 기미가 안 보인다.


할머니, 저희 방에 데리고 가서 같이 밥 먹이고 올게요.


내가 딸아이의 손을 아이와 잡게 하고 우리 병실로 데리고 가서 밥을 먹일 동안 할머니는 몇 번을 왔다 갔다 하며 들여다보신다.


어째요. 미안해서. 진짜 쟤 때문에 내가 못 살겠다.


정작 둘은 손잡고 앉아 웃어가며 밥을 잘 먹고 있는데도 그저 내게 폐를 끼쳤다는 생각에 사다 놓은 요구르트 한 줄을 건네신다. 자기도 여기서 밥 먹고 싶다는 7살 손자에게는 버럭 화를 내시고 얼른 방으로 데리고 가신다.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너무 미안해하지 않으셔도 된다고 손자를 추슬러 급히 방으로 향하시는 할머니의 뒤에다 대고 속으로 말했다.

어쩌면 할머니 말씀대로 아이들은 키워준 걸 기억 못 할지 모르지만 아이들의 손을 잡아주었던 그 온기는 그대로 남아 세상을 살 힘이 될 거라는 사실을 말해 주고 싶다. 지금 이대로도 충분히 잘하고 계시다고, 고맙다고, 이 시대의 할머니들을 토닥여 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