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나물을 다듬는 시간

사유하는 시간

by 꿈꾸는 momo

엄마가 건네준 콩나물무침을 먹으며 정갈한 콩나물의 자태에 감탄할 때가 있다. 엄마는 늘 콩나물의 꼬리 부분을 착착 다 떼 내고 나물을 무치신다. 질기고 긴 끝부분의 수염들을 제거하고 나면 통통한 콩나물이 가지런히 모여있다. 신문지를 펼치고 앉아 콩나물을 다듬으셨을 모습이 눈에 선하다.


데치거나 찌거나 하는 간단한 조리법에 참기름, 마늘, 소금이나 액젓 같은 몇 가지 양념으로 맛을 내는 간단한 음식인 것 같지만 나물은 여전히 내게 어려운 음식이다. 적당한 시간을 지키지 않으면 덜 익거나 너무 무른 상태가 되기 십상이고 양념의 적절한 배합으로 식재료가 가지고 있는 본연의 향과 맛을 뺏지 않도록 해야 하니 여간 까다롭지 않다. 게다가 요리를 하는 시간보다 다듬고 손질하는 시간이 더 길기에 꽤 공이 들어가는 요리가 아닐까. 나는 이 시간이 너무 아까워 나물 반찬 중에서도 손질이 쉬운 채소를 골라 요리를 하거나, 급할 때면 사 먹고 만다.


날씨가 서늘해지기 시작하니 따뜻한 국물이 먼저 생각난다. 장바구니를 들고 마트 안을 서성이다 콩나물 봉지에 눈이 간다. 망설이다 콩나물을 담는다. 아이들을 마중하러 나가는 시간은 언제나 초고속 스피드로 다가오기 때문에 반찬을 하나 만든다는 것은 내 휴식시간이 사라진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냉장고 야채칸에서 주인의 선택을 기다리다 갈색빛으로 축축하니 상해버린 수없는 콩나물들의 결말을 답습하지 않기 위하여 용기 있게 콩나물 봉지를 뜯었다.


조용하다. 모든 자극적 감각으로부터 이탈된 이 시간...


질긴 꼬리를 손톱 끝으로 꺾어낸다. 딱딱 소리가 난다.


둥이들은 낮잠을 잘 시간이겠네. 그동안 선생님들은 또 아이들 수첩을 적고 계실까. 커피라도 내려서 보내야겠다.


친구 인경이는 내가 소개한 곳에 가봤을까. 인경이 만나러 경기도까지 다녀온 지 벌써 한 달이 넘었네. 아들 녀석 때문에 걱정하던 그 눈빛과 말들이 다시 내게로 온다. 아들 녀석보다, 내 눈엔 친구가 더욱 절실히 염려되었다. 잠깐 곁을 내어주러 간 걸음이지만 손잡아준 것밖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계속 마음이 쓰인다. 나중에 전화해봐야지.


얼마 전에 엄마가 아프시다 했는데, 혜영이 언니는 어쩌고 있나...


나는 결국 콩나물을 다듬다 말고 휴대폰을 찾는다. 무겁고 걱정 가득한 목소리와 그간의 삶이 넘어온다. 당장이라도 가야 할 것 같은데, 그럴 수 없어 발꿈치만 들었다 놨다 반복한다.


전화를 끊는다. 익히지도 않은 콩나물들이 식은 듯, 생기를 잃었다. 몸체에서 떨어져 나간 꼬투리는 말라빠지고... 콩나물을 다듬는 시간, 누군가를 생각하게 만든다. 결국은 아무 도움도 안 되는 나 자신을, 콩나물을 마저 다듬어야 하는 나를 사유한다.


이럴 거면 콩나물을 사지 말았어야 하나. 아니, 이렇게라도 누군가를 생각하고 그리워하고 아파하게 해 준 콩나물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해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