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 왔다

아픔 없는 세상은 없겠지

by 꿈꾸는 momo

제발 아무도 안 아팠으면 좋겠다고, 아무도 슬프거나 힘든 일이 없었으면 하고, 이 땅의 슬픔과 아픔과 악의 원인이 되는 것들에 대해 증오하며 분노했던 시절이 있었다. 모두가 '노력'하면 동요에서 노래하듯 '아름다운 세상'이 만들어질 것 같았다.


우리 가게 방 한 칸에 하숙을 하던 고등학생 언니 셋 중 한 언니가 코피를 펑펑 쏟으며 도망치듯 들어왔던 날, 나는 고작 초등 3학년이었다. 바람이 찼던 기억이 난다. 흰색 패딩잠바를 입은 언니가 다급하게 방문을 열고는 숨듯 내 옆으로 들어왔는데 방바닥의 온기를 느끼며 배를 깔고 반쯤 졸고 있던 내게 언니가 몰고 온 바람은 참으로 찼다. 얼굴에 쏟아진 찬 기운에 졸던 눈이 번쩍 들었음과 동시에 웬 스포츠머리를 한, 키 큰 오빠가 주먹다짐을 하며 가게문을 벌컥 열고 언니를 찾는 소리가 들렸다. 장사하는 가게라며, 엄마가 진정시켜 돌려보내지 않았다면 그 언니는 무작정 맞았을 게 분명했다. 이미 엉망진창이 된 얼굴에는 코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는데, 여자를 이렇게 때릴 수 있는지, 아니 내가 친오빠에게 맞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폭행에 내 심장은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엄마와 언니들이 일의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 있을 때도 내 귀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온 몸은 바들바들 떨렸다.


엄마, 왜 싸우는 거야? 크면 저렇게 되는 거야?


결국은 무서워서 울음을 터뜨린 나를 엄마가 다독이셨고 나는 엄마의 무릎을 베고야 잠이 들었던 것 같다.


그때는 그저 모든 아픔들이 두려웠다. 내게로 올까 봐... 그런 것들이 존재한다는 게 싫고 무서워 남에게 벌어지는 일들이 내게는 오지 않길 바랬던 것 같다. 애써 차 버리고 고집스레 울면 날 피해 갈까 싶어 예방주사를 맞는 것도, 치과에 한 번 가는 것도 그리 울었던 아이였다.

이제는 아픔에 대해 무덤덤해진다. 아픔을 외면하거나 공감하지 못하는 무덤덤함이라기보다 소란스럽게 밀쳐내는 것이 아니라 순순히 받아들인다고 해야 하나.


같이 가자는 남편을 만류하고 혼자 서울행 버스를 탔다. 수술 후 1년째 검사다. 뼈 검사부터 복부, 가슴 CT까지 서너 가지 검사를 하는데 5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환복으로 갈아입고 대기석에 앉아 있는데 옆의 환자 두 분이 초면에 이야기를 나누고 계신다.


나이도 젊어 보이는 데 얼마나 먹었소?

그러게. 내 나이 이제 62살이요.


의자에 떨어져 있는 옷장 열쇠가 내 건 줄 알고 챙기니 옆의 분 것이었다.

아, 죄송합니다!

아이고, 우리 사이에 무슨... 죄송할 게 있나.


두 분은 허탈하게 흐흐 웃으시며 날 짠하게 바라보신다. 아픔은 어떤 실수나 사람에게도 관대한 마음을 갖게 한다. 별 것 아닌 일이다.


그냥 주사 맞고 잠시 누웠다 나오면 되는 거다 싶었는데 생각과 몸의 반응은 다르다. 돌아가는 기계소리와 금속에 닿는 감각은 여전히 낯설다. 뜨거움이 온몸을 훑고 지나간다. 6개월마다 쬐는 방사선도 몸에 무리가 가는 것 같은데 항암은 어떻게 받는 건지, 아.. 새삼 모든 환자들에게 측은한 마음이 생긴다. 세상이 존재하는 한 공존하는 연약하고 소외된 어떤 존재들에게도 여전히 태양은 비치고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