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어려운 인간관계 2

아는 사람

by 꿈꾸는 momo

기침이 멈추질 않는다. 숨통 안에서 빙빙 도는 어떤 바삭하고 가벼운 입자들이 까끌까글 날 괴롭게 만들 때, 오히려 뭉툭하고 걸걸한 가래라도 웩 뱉고 싶은데 마른기침은 횡격막 아래까지 들썩이게 한다. 목에 계속 침을 삼키고 물을 넘겨 보지만 이내 나오는 기침. 목에도, 폐에도 머리칼 같은 게 붙어 날 괴롭히는 것 같은 상상이 든다. 그렇게 괴로울 땐 지금의 감각에 온통 집중되어 세상의 모든 관심사로부터 멀어진다. 그러다가 앓던 이를 빼고 난 후처럼, 모든 것이 괜찮아졌을 땐 나의 감각은 곧, 그것을 잊어버리고 만다. 폐의... 존재 자체를 의식하지 못한다.

내 몸에 붙어있는 기관에 대한 인지마저 어떤 신호를 보내기 전엔 이렇게 무지(無知)한데 내 주변의 것에 대해서는 얼마나 더 그러할까.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이, 나는 다른 존재에 무감각하다. 반대로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이, 남들에게 나는 그렇게 중요한 존재가 아니다. 우리는 곧잘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거나 시선을 신경 쓰지만 생각보다 더 많이, 서로에게 무관심한 게 사실이다. 그것이 슬픈 일이 아니라 꽤나 자유로운 일인 것을 깨닫지만 점점 이런 관계들이 주는 가벼움과 허무감에 빠지기도 한다.


둥이들이 아파 병원을 다녀오는 길에 오래전에 같이 근무한 후배를 만났다. 각자 손잡은 아이들 때문에 몇 마디의 인사로 헤어졌지만 몇 년 전 남편의 급사(急死)로 아이 둘을 혼자 키우는 후배에게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저 오랜만이지, 잘 지내죠? 정도의 인사... 후배 또한 내 소식은 전혀 모를 것이었다. 오랜 세월 아이가 없던 내 손에 두 아이가 잡혀 있으니 어머, 아이들? 하는 말로 확인했을 뿐이었다. 같이 근무를 하는 해가 아니면 그저 한 두 마디의 오고 가는 인사로, 들려오는 소식 정도로 사람을 이해하는 교직사회의 관계란, 정작 얼굴을 보아도 근황을 묻는 인사가 끝나면 썰렁하기 마련이다. 간혹 길게 친분을 유지하며 만남을 이어가는 동료가 생기기도 하지만 그래 봤자 1년에 한두 번 정도 만나 밥 한 끼 먹는 정도니 시간의 간격을 넘어 마주하는 얼굴들과의 만남은 언제나 아쉬움이 남는다.


우리들의 '아는 사람'은, 이 시대의 '아는 사람'은 그런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어떤 공통분모로 엮인 수많은 그룹채팅방의 카톡 소리를 무음으로 처리해 놓는 이유가 관계의 가벼움을 대변하는 것인지도...

한 두줄의 정보로 해석될 '나'란 존재가 곳곳에 엮여 있는 느낌이랄까. 어쩌면 '아는 사람'이지만, 잘 몰라서 편하고 세련될 수 있는 관계일지... 때론 그것이 아주 편하다가도 아주 외로워질 때가 있다. 그렇게 많던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생각될 때가 있다. 부단히 개인적인 삶을 누리고 싶어 하지만 모순되게도 외로움을 느끼는 우리 시대의 사람들을, 그 속에서의 나를 본다.


정말 '아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누군가에게, 그리고 누군가를 좀 제대로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