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우면서 배워간다
사람마다 에너지가 다르다. 재능도 다르다. 관심분야도, 기질도, 말의 방식도, 생각도... 우주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는 수많은 존재들의 부딪힘은 다르기 때문에 필연, 갈등을 야기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통!
잔잔한 강물에 던진 돌멩이는 물 낯 위로 동심원을 그리며 퍼져간다. 내가 던진 돌멩이는 하나일 뿐인데도 파문(波紋)은 여러 개로 번져나가고 당신, 또 누군가가 던진 돌멩이가 그리는 파문과 부딪히기도 한다. 원치 않게 살얼음이 끼는 환경을 만날 땐 동심원조차 그리지 못하고 스스로가 던진 돌멩이의 충격에 금이 간다.
세 살 난 꼬맹이에게는 주사 꽁! 맞는 병원이 제일 무섭고 여섯 살인 형아는 호기심 있게 듣고 보았던 귀신이나 유령 같은 존재가 꿈에 나오는 게 무섭다. 하지만 어른이 된 나는 더 이상 그런 것쯤은 아무렇지도 않다. 무섭다면 세월이 갈수록 사람이, 사람과의 관계가, 그리고 그 속에서 발견하는 내가 더 무섭다.
싸우기 싫어 참았던 말들과 감정은 어느 순간이 되면 앞, 뒤의 말을 다 자르고 뜬금없는 말로 상대를 당황케 하기도 하고 결국은 더 큰 싸움이 된다. 가족이라는 이유로 더 자주, 더 깊이 상처를 주고받기도 하지만 싸우면서 상대를 알아가고 배워간다. 내 시선으로 보았던 것보다 더 묘하고 더 복잡한 상대를 말이다.
형아니까 양보해야지, 동생 울잖아 좀 줘라.
첫째가 어른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자기 잘못도 아닌데 강제로 탈취당하는 듯한 자기 만족감... 순순히 주는 경우 또한 드물지만 무작정 양보를 강요하는 것은 아이에게 너무 가혹하다. 고집스러운 울음이 주는 불편함이 있지만, 우리 부부는 꼬맹이들에게 먼저 가르친다.
울지 말고 한 번 부탁해볼까? 형아, 나도 그거 갖고 놀고 싶은데 좀 줄래?
꼬맹이들은 우는 소리를 그치고 엄마의 말을 따라 한다. 거절을 당할 때도 있지만 얼마간 기다리면 첫째는 알아서 양보를 해준다. 이렇게 서로 배워간다. 하지만 꼬맹이들끼리의 싸움은 정말 치열하다. 무조건 뺏고 뺏기는 싸움이 시작될라 치면 한 놈은 도망가고 한 놈은 끝까지 쫓아가 멱살을 잡아 넘어뜨린다. 아주 어릴 때는 아무 데고 물어뜯어 옆에 붙어 있지 않으면 누군가의 몸에 꼭 이빨 자국을 남겼다. 물린 아이는 죽어라 울어대고 문 아이에게는 엄한 눈과 목소리로 야단을 쳐서 동시에 울음바다가 된다. 전쟁이 따로 없다.
이제 무는 일은 없어졌다. 하지만 여전히 아이들은 싸우면서 논다. 상대가 가지고 있는 물건이 더 좋아 보여서, 내가 더 많이 가지고 싶어서, 엄마, 아빠의 사랑을 더 많이 받고 싶어서... 싸우면서 내 감정을 발견하고 상대의 감정을 알아간다. 싸움이 주는 상처를 알아가고 더 나은 관계를 위해 노력하는 방법을 배워간다. 좀 덜 싸워가겠지만 더 다양한 싸움을 해야 할 거다. 그 싸움에서 너무 비겁하거나 무모하거나 회피하지 않길, 어쩌면 그 싸움은 나를 발견하는, 아픈 과정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