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걷고 싶은 사람이 있다
가을볕이 나뭇잎에 내려앉아 낯을 간지럽히면 나뭇잎들이 보들보들 떨다 후드드 내려앉는다. 웃음 진 색으로 변한 나뭇잎들의 낙하(落下)는 전혀 불안하거나 슬프지 않다. 우아하고 아름답고 색다르다. 바람결을 타고 흩어지다 걷는 이들의 발길에 밟힌다. 기분 좋은 웃음이 난다. 하지만 누군가의 눈길, 손길, 발길이 닿기도 전에 사그라질 땅이 없어 빗질에 쓸어 담기는 이것들이 아쉽기만 하다. 자연에 머무르지 못하는, 자연스럽지 않은 낙엽(落葉)들의 마지막은 그래서 더 진하다.
하루아침에 쌀쌀해졌다. 사람 손이 안 닿은 앞산 감나무에는 주황색 감들이 총총이 달려 가지를 푹 늘어뜨리고 있다. 이렇게 가을을 보내버릴까 싶어 모든 일을 제쳐두고 길 위에 섰다. 수채화 풍경 같은 가을길을 눈에 담고 마음에 담아 그것이 주는 에너지를 모아둔다.
어제 잠을 제대로 못 잔 것 같아 찌뿌둥했지만 역시 나오길 잘했다. 세 아이들을 챙겨 보낸 분주한 등원 길의 리듬에 숨이 가빴다가, 쌓인 집안일이 뒤통수를 당기는 것 같다가도 무작정 출발한 마음은 이내 고요해진다. 함께 나선 동생과 들어선 숲길은 그저 우리를 위로한다. 잘 왔다고 토닥여주는 친정엄마의 품같이 온화하고 따뜻하고 정겹다. 곧 비가 쏟아질 것 같은 흐린 하늘마저 운치 있다 느끼며 우리는 그 길을 걷고 또 걸었다.
아이들과 같이 오면 너무 좋아하겠다!
데려왔다 치면 꽁무니만 쫒아 다니며 위험한 일을 제지하느라 진땀 뺄 게 뻔한데 하늘과 호수와 숲의 찬란한 색을, 조화를 보여주고 싶어 우리는 또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어쩔 수 없는 엄마인가 보다.
언제 엄마와 함께 길을 걸었더라, 언제 아빠와 함께 길을 걸었더라...
부모님과 함께 길을 걸은 것이 그러고 보니 벌써 6년 전인가 보다. 모처럼 쉬는 날이 생겨 가까운 산에 같이 가는 게 어떠냐고, 벚꽃이 흐드러진 봄에 쉬는 날이 아까워 건넨 내 말에 흔쾌히 그러자 하셨던 것 같다. 시집간 딸아이와 오랜만에 데이트를 한다고 다른 약속도 취소하시고 왔다는 아버지의 기분 좋은 목소리가 기억난다. 오르고 내리는 길에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줄기차게 이야기를 하며 걸었던 것 같다. 유명한 김밥집에서 내가 사 온 김밥을 먹으며 요즘 파는 김밥은 맛있네라고 하셨던 아버지, 집에서도 이렇게 해봐야겠다고 했던 어머니... 혹여나 오가는 길에 만난 행인들이 참 보기 좋다고 하며 우리 관계를 물으면 아버지는 뭐가 그리 좋은지 딸래미라며 자랑처럼 이야기를 하셨다. 그러고 보면 아버지는 언제나 그러셨다.
대학생이었을 때조차 나의 신랑감은 '아버지 같은 사람'이라 했던 것을 생각하면 나도, 아버지도 서로에 대한 애정이 참 깊었다. 나에게 아버지는 늘 재미있고 따뜻한 분, 게다가 나의 기댈 언덕이셨다. 어쩌면 책임감이 강한 아버지와 의존적인 내가 잘 맞았던 건지도... 그래서 오빠나 남동생이 겪었던 아버지와의 갈등을 나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삶의 영역이 달라지고, 생각이 변해가면서 아버지와 나는 점점 멀어졌다. 정치 문제가 아니더라도 곧잘, 서로 다른 입장으로 이야기를 하다 얼굴을 붉히며 입을 자리를 떠야 할 때도 있었다. 내가 변한 건지, 아버지가 변한 건지, 아님 우리 모두가 변한 건지 모르겠지만 이제는 꼭 필요한 말 아니면 잘하지 않는 사이가 되어버렸다. 나의 어떤 부탁에 '아가' 하며 통화를 하시던 어제 아버지의 다정한 목소리 때문인지 몰라도 그냥, 이 가을길에 아버지 생각이 난다. 아버지와 함께 걸은 날이 참 멀구나. 아무래도 오랜만에 아버지에게 데이트 신청을 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