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살기 쉬운 건 아니지만
원래 베란다 창틀은 비 오는 날 하는 거라고 이전에 친하게 지내던 김 여사님이 그랬었지. 멀리 이사를 가버린 김여사 님은 아직도 그렇게 청소를 꼼꼼히 하실까...
언제 닦았는지 알 수도 없는 창틀의 먼지는 검은곰팡이인지 구분을 못하게 제대로 진을 치고 있다. 서재 바깥쪽 창문은 닫지도 않고 열려 있었다. 어젯밤 자기 전에 창문을 닫아 달라고 했건만 남편은 대답만 하고 잊어버린 것 같다. 그러면 아침에라도 내가 닫았어야 하는데 이놈의 정신은 어디다 팔아먹었을까... 장판에 흥건히 고여 점점 영역을 넓혀가고 있던 물길을 보며 마른 수건을 가지러 간다. 기저귀를 채울 참에 보기 좋게 오줌을 지리며 깔깔대는 아이를 뒤로, 뒤처리에 급해진 모양새마냥 바닥을 훔친다. 이 참에 두루두루 창문틀을 닦아내는 손가락은 금세 뻣뻣해 저리다.
사람마다 청소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다르긴 다른가보다. 바닥에 뒹구는 머리칼과 먼지만 없으면 괜찮은 나는 매일 청소기를 밀고 닦는 게 일이지만 창문틀에는 손이 잘 안 간다. 어느 날 교실 개수대 아래 선반을 열고 몇 년이나 묵은 청소도구며 세제들을 버리고 먼지를 닦아내는 나에게 문틀 청소를 그렇게 하면 어떻겠냐는 부장 선생님의 말을 들은 이후로 창문틀은 새롭게 환기하게 된 청소의 영역이지만 말이다.
점심까지 걸러가며 창틀을 닦아내면서 애써 외면했던 내 묵은 감정과 기억의 찌꺼기들까지 닦아내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그래, 장래희망이 뭐지?
작가요.
흐흐, 니가?
분명 담임 선생님은 조소에 가까운 웃음을 터뜨리셨다. 중학교 때까지 언제나 학교 대표로 백일장을 나가 상을 타 왔던 나는 당연히 내 꿈이 작가여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정말로 글 쓰는 재주가 있는 줄로만 알았지. 시골이어서 기회가 많았을 뿐이었다는 걸 뒤늦게 알아차린 거다. 그때부터 나는 글을 쓰지 않았다. 내 꿈은 우습게도 사라졌다. 꿈이 없어진 나는 단지 대학 등록금이 없는 사관학교나 국립대학을 가는 게 목표라면 목표였다.
늘 상위권에서 재주 많은 아이로 인정받던 내가 하루아침에 추락했던 건 고등학교 때부터였다. 멀리 집을 떠나 기숙사 생활을 하며 대학입시를 위해 졸면서도 책상 앞에 앉아있던 그 긴 시간... 다섯 손가락 안에서 밀려난 등수는 생각지도 못했던 내게 세 자리 수의 등수는 충격적이었는데 게다가 성적과 등수가 교실 벽에 붙어있을 때의 그 수치심은 '나'란 존재를 학대하고 부정하고 싶을 만큼이었다.
경쟁이라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 구조인지 상위권에 있을 때는 몰랐다. 일단 선생님들의 인정이나 시선에서 밀리고 폭력에 가까운 비아냥과 무시를 당한다. 칠판에 적혀 있는 수학 문제 하나를 제대로 풀이하고 설명하지 못하면 가차 없이 손찌검을 당했고 운 좋게 걸리지 않고 앉아 있는 친구들은 숨죽여 긴장했다.
"market"
출석번호로 호명당한 나는 자리에 일어서 단어를 발음했는데 영어 선생님은 'R' 발음이 좋지 않다며 계속 "다시!" "다시!" 하셨다. 아마 서너 번은 다시 했을 거다. 그러다 점점 소리가 작아졌고 결국은 입을 닫아버렸다. "R"발음 하나로 무너진 내 자존심은 결국 팔짱을 낀 채 미간을 찌푸리고 섰는 선생님 앞에서 눈물을 보이고야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때마침 마치는 종이 울렸기 때문이다. 나의 "R" 발음 하나로 지루한 싸움을 치른 선생님은 이렇게 당부하셨다.
"학생은, 그렇게 살면 세상을 살지 못합니다. 세상 살기가 그리 쉬운 줄 압니까?"
도대체 세상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나는 그 날부터 시험지 영어만 만점을 받는, '영어 못하는 아이'가 되어 버렸다. 원어민 앞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정말, 이렇게는 세상을 살지 못할 것 같기도 했다. 학원 하나 다녀본 적 없는 나는 거북이처럼 천천히, 그러나 끈질기게 이를 악물고 눈을 비비며 공부를 했지만 겨우 올라갔다 싶으면 다시 내려올 것이 두려워지곤 했다. 수능보다는 내신에 강한 나는 곧 내신성적으로 상위권에 들어갔지만 모의고사를 칠 때는 좀체 오를 기세가 없는 성적 때문에 답답해서 죽을 것 같았다. 내 공부머리에 대한 한계에 자책하다가도, 영어학습지 하나 시켜 주지 않은 부모님을 원망하다가도, 성적표를 팍팍 찢으며 다시 감정을 꾹꾹 눌러 오로지 책상 앞에 죽치고 앉아 비상을 꿈꿨었다. 뭣 때문에, 그렇게...
어쩌다 숫자로 평가되는 성적으로 상위권에 들어가는 날이 왔다. 내 지식과 지혜의 탁월한 척도와 상관없는 그 숫자들... 그래도 여전히 냉정한 이 세계는 1등 만을 기억한다. 반에서 상위권에 있는 학생들을 모아 '논술'이라는 새로운 전형에 대비한 수업을 해 준다고 했다. 갑자기 한 교실에 불러 모아 B4사이즈의 종이를 나눠주더니 칠판에 적힌 주제에 대해 논술을 하라 했다. 생각나는 대로 글을 썼다. 생각나는 대로... (논술을 에세이처럼 쓰다니, 내가 확실히 잘못 쓴 게 분명하다.)
다음 시간, 도대체 글들이 왜 이렇게 형편없냐며 화를 내며 들어온 국어 선생님의 손에는 대표로 읽어줄 '형편없는 글'이 쥐어져 있었다. 첫 줄, 아니 첫마디를 뗄 때부터 나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선생님이 갈수록 분노하며 글을 읽어가시는데 그 분노 게이지에 따라 내 얼굴의 온도도 같이 상승했다. 키득키득 웃고 있는 몇몇의 남학생들은 선생님의 손에서 슬쩍 이름을 훔쳐본 듯했다. 아무것도 배우지 않았는데, 배우기도 전에 못하는 아이가 되어버렸다. 난 자진해서 그 특별수업을 포기했다.
다시 돌아보기 싫었던, 다시 가기 싫은 그 시절이 다시 생각나는 건, 그리고 용기 내어 다시 글을 쓰는 건 나 스스로조차 돌봐주지 않았던 '나'를 다시 찾기 위함인지도 모른다. 여전히 정해진 답을 향해 가고 있는 좁아터진 우리의 교육공간과 현실을 보며 그 속에서 시름하고 있을 또 다른 이름의 '나'가 있을까 안타깝기도 하고...
분명 세상 살기란 쉽지 않지만, 나는 세상을... 잘... 살고 있다. 깨끗해진 창틀만큼 그 기억들이 주던 감정들도 조금씩 희미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