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 모인 사람들

어려운 사랑

by 꿈꾸는 momo

난리가 났을 때, 어머니와 큰 오빠만 뒤주에 자면서 집을 지키고 다른 가족들은 땅을 파고 숨어 지냈다는 이야기를 외할머니께서 해주신다. 무작정 세간살이를 뒤지고, 어디선가 훔쳐온 돼지나 닭들을 들이밀던 군인들은 어느 날은 미군, 어느 날은 인민군이었단다. 당시 부유했던 외할머니 집 마당에서는 매일 돼지를 삶아냈다고. 굴 속에 숨어 그 냄새를 맡는 것도 무서워 오줌을 지릴 정도였다고. 나에게도 한참이나 낯선 이야기이다. 어린 세 아들에게는 전쟁이란 단어가 스릴 넘치는 모험쯤으로 생각되는 모양이다. 왕할머니의 기억에 묻어있는 아프고 어렵던 역사를 절대 온전히 이해하긴 어렵겠지. 마을의 남자들을 끌고 가 씨를 말렸다는 그 시간들은 분명, 외할머니에겐 분노와 공포였을 것이다. 그 때로부터 이어져 온 '빨갱이'에 대한 적대감은 이념이 아닌 신념인 듯하다.


'국민학교'를 다닌 나도 그런 교육을 받았다.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를 외치며 웅변대회를 치르기도 했고 학교 뜰에 서 있는 이승복 동상을 보며 불의에 대적하는 용기를 배웠다. 북한군이 돼지얼굴로 그려졌던 만화를 보며 그들을 혐오하는 마음을 키워갔다. 반공에서 평화통일로 넘어가던 즈음의 혼란은 이상한 정서로 남아있다. 세뇌당하다시피 혐오하던 적을 갑자기 동정하고 사랑해야 할 때, 눈물 흘리며 서로를 껴안는 이산가족의 상봉 장면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 주변의 눈치를 봐야 했다. 그렇게 평화통일을 배웠다.


학교가 생긴 이유가 국가가 원하는 인재를 양성하기 위함이라는 걸 알았을 때, 국가 교육과정이 가지는 한계와 세계관을 이해하게 되었을 때 역사를 다시 들여다보았다. 어떤 것도 '절대적'이 될 수 없음을, 인간의 욕심과 맞물려 돌아가는 세계의 변화와 문화와 사상들의 흐름을 볼 수 있는 안목이 필요함을 절실히 깨달았다.


광화문에 모인 사람들이 모두 전광훈을 지지하는 사람은 아닌 것 같다. 동네의 수많은 어르신들이 관광버스를 대절해 서울로 몰려들었다. 그들이 하나같이 외친 것은 '나라를 살리자'라는 기치 아래였다. 가짜 뉴스라 불리는 편향되고 왜곡된 정보가 얼마나 이 마음을 절실하게 고양시켰는지를 지켜보면 놀라울 정도다. 나라를 사랑하는 그들의 불타는 마음은 결국, "우리는 지금 죽어도 좋으나 우리 자식들과 손자들을 내버려 둘 수 없다"는 유별난 자식사랑과 연결되어 참가자들의 비장한 결심으로 이어졌다. 우리에게 너무도 불편하게 들리는 '현 정부는 빨갱이'라는 전제 아래였다.


아버지가 광화문에 가셨다는 사실을 다음 날 알았다. 나와는 정치적 색깔이 다르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심하게 부딪힌 이후로 서로 말을 아꼈기에 별 어려움은 없었다. 광화문 집회는 정기적으로 이루어진 집회였고 아버지는 광화문 집회까지 가면서 정치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좀 유별나다 했었다.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주위 분들의 끈질긴 권유에 어쩔 수 없이 따라가셨다는 아버지는 집단 속에서 고취된 감정과 격앙된 논리를 수많은 유튜브 영상으로 자식들에게 전달하며 우리를 비난하기까지 하셨다. 참 힘든 시간들이다. 자식들이 모두 적이 되었다. 아버지는 영원히 오지 말라는 선포까지 하셨다.


대중으로 모인 행동이 순결하게 빛을 발할 때도 있지만 많은 이들을 폭망 하게 하는 기폭제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집단 속에서 고취되고 끈끈해진 정서는 바깥의 소리나 공격에 더욱 강화될 뿐이다. 단순하게 방역의 책임으로 어르신들을 설득시키기엔 우리가 이 세대를 너무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인가. 어떻게 아버지를 이해해야 하는 건지, 설득시킬 수 있는 건지, 아니면 그저 사랑해야 하는 건지, 그것이 나 스스로 가능이나 한 건지, 우리는 연락을 끊은 채 많은 밤을 이렇게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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