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것들, 그리고 새로운 시작
태풍이 지나갔다. 남은 바람은 구름 덩이들을 빠르게 밀고 간다. 구름이 뚫린 자리에 쨍하게 떨어지는 햇빛에 선명한 내 그림자가 같이 걷고 있다. 해를 등지고 길게 뻗은 그림자가 남은 오후의 시간을 알린다.
문장을 남기려 잠시 앉은 의자가 아직 축축하다. 마른 듯 보이던 표면에 습기가 묻어있다. 머리칼을 쓸어주는 바람에도 습기가 남아있다. 그래도 참 시원하다. 뭔가를 새로 시작하고 싶다.
이미 가을인 것처럼 떨어진 노란 잎들이 젖은 채 길에 뒹군다. 하수구를 흐르는 거센 물소리는 어딘가로부터 시작되었을 비의 양을 짐작케한다.
남은 바람이 나무들 사이를 휩쓸고 지나갈 때, 구르는 낙엽과 구르는 쓰레기들 틈에서 가만히 바람을 맞고 섰다. 나뭇잎들이 부딪히는 소리들 사이로 여름 끝에서 쨍하게 울어대는 매미 소리가 상쾌하다. 무거운 물방울을 달고 흔들거리며 거미줄에 매달린 호랑거미의 안간힘을 닮고 싶다. 어떤 것보다 강하게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 여린 생명체가 다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