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토리

다시 자리를 털고 일어선다

by 꿈꾸는 momo

어느 때보다 비를 자주 뿌렸던 여름이라, 외출을 삼갔던지라, 이삭처럼 매단 꽃 열매들을 보지 못했다.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있다가 갑자기 결이 달라진 바람을 느낀다. 상수리나무 아래에는 허물같이 남은 열매껍질들이 수북하고 상투를 벗어던진 듯 매끈한 도토리들도 눈에 띈다. 미처 떨어져 나오지 못한 도토리들은 뾰족한 모자를 둘러쓰고 부끄럽게 숨어있다. 모처럼 나선 공원에는 인적이 드물어 마스크도 내려썼다. 한낮의 햇살은 아직 따가우니 아이들 이마엔 금방 땀방울이 맺힌다. 매끈하든 못났든 간에 숨바꼭질하듯 찾아낸 도토리를 손에 쥐고 도토리다! 하며 외치는 아이들. 말 그대로 신이 났다. 매끈매끈한 것만 모으고 싶은 내 맘이랑은 다르게 아이들 눈에는 어떤 도토리도 반갑고 좋은 모양이다.

그래, 아이의 시선으로 다시 세상을 본다. 아이의 눈에는 온통 아름다운 것으로 가득 찬 세상인데 나는 갈수록 세상이 어려우니, 그래서 어른인가 싶기도 하다가 저들의 천진난만함과 웃음에 전염되듯 행복해지니 살만한 것인가 싶기도 하다. 도토리 하나에도, 바람을 쫓듯 달음박질하는 그 순간만으로도 온몸으로 기쁨을 표현하는 아이들에 비하면 가진 것이 훨씬 많은 나는 기쁨에 인색하기만 하다.


있는 그대로의 존재를 받아들이며 즐거워하자. 그래 그러자. 아이들은 무조건 행복해야 한다. 다음 세대가 건강하고 행복해야 미래가 있지 않을까 하고 꿈꾸듯 읊조리던, 사명과도 같은 첫 마음이 무너지지 않게 다독인다. 내 길을 간다. 누가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상관없이 말이다. 하하. 너무 거룩하고 고상한 이상은 흙이 잔뜩 묻은 도토리 껍질처럼 때론 하찮게 여겨진다. 누군가에나 밟히고 스러져 이듬해가 되도록 이 자리를 지킬 이것들이 나무의 거름이나 될까.


주웠던 도토리를 멀리 던지는 장난을 치던 녀석이 한 녀석에게 다가간다. 도토리를 손에 가득 움켜 쥔 아이의 손에서 몇 개를 뺏으려 한다. 싸움이 되기 전에 중재와 타협을 해야 한다. 역시 마지막은 싸움으로 끝나는구나. 아름다운 결말을 위해선 자리를 털고 일어나야 한다. 울상이 된 녀석들 곁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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