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의 등을 보는 슬픔
아이들의 왕할머니가 병이 나셨다. 우리가 간다 하면, 며칠 전부터 장만한 먹거리들이 차곡차곡 쌓여있곤 했는데. 온다는 날은 아침부터 밭 끝머리에 서서 하매나 올 건가고 마당을 누비셨을 텐데. 할머니~! 업빠 할머니~! 하고 부르면 "우리 샛강구들 왔소"하고 화답하던 목소리가 없다. 적막한 기운이 마당을 감돌며 덩달아 공기도 차갑다. 먹지를 못해 보얗게 마른 얼굴. 평소보다 더 주름진 얼굴이 가엽다.
홍삼 한 박스를 들이민다. 이런 거 내 안 먹어도 된다. 새끼들 신경 써라 하면서도 꼬박꼬박 드시는 부지런함을 따라가느라 나도 사다 놓기 바쁘다. 어린 시절, 방학 때마다 외갓집에서 삐대며 외할머니의 살가운 챙김을 받다가, 커서는 내 자식까지 당신의 등에서 호강을 누렸으니 이제라도 뭐 하나 드릴 수 있는 게 있다는 것이 고맙다. 그런데 전에 사둔 홍삼 박스가 그대로다. 입맛이 없어 못 드신다더니 참말이다.
노인이 죽을병에 걸렸나 하고 멀리 있는 자식들은 어머니 편으로 돈을 부치고, 모시는 어머니는 큰 병원에라도 가봐야 할 건가 싶고. 동네병원에서 비싼 링거를 맞아도 감기몸살이라는 증상이 나아지질 않으니 당신은 온종일 방구석에 틀어박혀 얼굴도 보여주길 마다하신다. 짐이 되고 싶지 않은 게다.
죽었던 형제들이 찾아와 귓전을 시끄럽게 한다고 한 숨도 못 잤다 하는 말씀을, 한 사흘을 꼬박 날을 새셨다는 말씀을 이제야 하신다.
유언처럼 딸에게 당부한 말은 "나 가고 나면 넌 농사짓지 마라"는 것이었고, 가진 돈을 꺼내어 신세 진 사람들에게 대접하라 주시고, 정이 깊이 든 나의 세 아들을 그리워하신다. 오는 날이면 언제나 당신의 살 냄새를 맡으며 자는 첫째에게는 눈물이 그렁하도록 아쉬워하신다. 지금 당장 떠날 사람처럼 말이다.
껍데기만 남았다며 여름에도 긴팔 옷으로 살을 가리시던 외할머니의 옷이 더 두꺼워졌다. 무겁고 차가워진 공기처럼 가라앉는 것 같은 모습에 애잔하다. 죽음을 준비하는 듯한 그 모습이 처연하다. 노인의 등을 가까이 보는 것은 매우 슬픈 일이구나.
노인이 죽는 것은 당연하다고, 나이 많아 늙어 죽으면 호사라고들 하지만 그렇지 않을 것 같다. 힘없고 짐 되는 노인은 언젠가 내가 될 것이고. 마흔 줄에 서서도 예전 같지 않은 몸의 신호에 마음이 꺾이곤 하는데, 세월을 더하며 흔들렸을 몸과 마음을 부여잡느라 얼마나 애썼을까. 때론 악착같이 움직이고 매몰차게 자신의 것을 챙기는 것같이 보여도 그게 다 자식에게 짐이 되기 싫어서인데.
곧 일어서실 거다. 또 아이들 손 잡고 마당을 걸으셔야지. 묵은 밭을 다 갈아엎고 칭얼대는 꼬맹이를 업어주시던 당신이신데. 옛날 보던 그네에 아이처럼 기뻐하시던 그 웃음을 기억한다.
당신의 남은 세월이 더 곱고 달콤하길, 당신의 남은 날들을 더욱 사랑하리라 마음먹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