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이야기
어릴 적에 빼빼 마르고 키가 작았던 나는 배가 아프다는 말을 참 많이 했다. 동네에는 작은 의원만 하나 있었는데 사람들은 그곳 의사를 돌팔이라 부르곤 했다. 그래서인지 아버지는 의원이 아니라 동네 약방에만 날 데리고 다니셨다. 의원이 그뿐이어서 그랬는지 몰라도 학교 신체검사를 하는 날이면 항상 그 돌팔이 의사가 흰 가운에 청진기를 걸고 왔다.
아마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속옷만 입고 복도 양쪽 벽에 한 줄씩 붙어 서 있었을 것이다. 짓궂은 남학생들은 검사를 다하고 지나가는 저학년 동생들의 팬티를 끄집어 내리는 장난을 치기도 했는데 나는 정말 그런 남학생들 뒤통수를 갈겨주고 싶었다. 물론 속으로만 분을 내는 것이었지만 사실은 일찍 가슴 몽우리가 생긴 내 몸의 변화를 들킬까 안절부절못한 것이기도 했다.
빈 교실에 앉아 있던 그 돌팔이 의사는 기름기가 줄줄 흐르는 이마를 가지고 있었는데 교실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무마시켜줄 만도 한 따뜻한 분위기가 어쩌면 지독히도 끈적하고 숨 막히게 했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그만의 색깔과 분위기가 있다는 걸 그때 알았다. 나는 본능적으로 내게 닥칠 어떤 불편한 기류를 짐작했는지도 모른다. 겨드랑이 밑까지 속옷을 다 걷어올리라는 그 돌팔이 의사의 눈빛은 턱 밑까지 수치심이 차오르게 했다. 청진기로 내 마음속의 소리까지 들을 수 있었다면 이 의사는 조금 뜨끔했을까. 돌팔이 의사의 진찰은 짧고도 길었다. 그냥 찔끔 눈물이 났다. 발 빠른 친구들은 한 해 위인 k 언니가 책상에 엎드려 울고 있다는 말을 전해주었는데 과연 나만 느낀 수치심은 아닌 걸로 조금 위로를 얻었다. 철없는 남학생들은 그야말로 철없이 팬티바람으로 뛰어다니며 이해할 수 없는 그 소식에 잠깐 생뚱맞은 표정을 지을 뿐이고.
흰 가운의 권위 뒤에 숨어 있던 그 불편한 시선은 여태 아버지나 오빠, 남동생에게서 느낄 수 없었던, 참 불쾌한 어떤 것이었는데 그것은 오랫동안 도꼬마리처럼 내 기억에 붙어 왜곡된 남성상을 만들어냈다. 아니, 몇 번의 경험을 통해 강화된 것일 수도 있는데 어떤 권위 뒤에 숨겨진 남성의 단단한 본능을 읽을 때마다 그 돌팔이 의사를 떠올리곤 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대놓고 당신이 잘못했소 할 수 없는, 아주 묘하게 기분이 더러워지는 순간인데 어떨 때는 사람이 아주 많은 공간에서도 태연히 일어나곤 했다. 어느 날 쉬는 시간에 뒤에서 날 끌어안고 한참을 운동장을 바라보던 담임 선생님의 나쁜 손. 제3의 관찰자 시점에서 본다면 그저 제자를 사랑하는 한 선생님의 따뜻한 격려 정도로 보일, 알록달록한 장면이겠지만 와글와글한 그 시간이 내게는 당혹스러운 정지 장면으로 기억된다. 반항할 수도, 뭐라 표시할 수도 없는, 절대 강자 앞의 절대 약자. 학교 관사에 사셨던 그 총각 선생님은 어느 날 결혼을 하셨고 구멍 난 양말 대신 멋진 바바리코트를 입고 나타나셨다. 이제 더 이상 선생님을 닮은 저주인형을 만들지 않아도 되었다.
세상의 남자들이 모두 또는, 항상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한 남자를 받아들이기까지는 꽤 어려운 시간들이 걸렸지만 어쨌든 나는 한 남자의 아내이고 세 남자의 엄마가 되어 있다. 전혀 다르고 전혀 모르겠는 남자를 혐오하기까지도 했던 내가 '남자'라는 존재에 온전히 둘러싸여 있는 지금이 퍽 아이러니하다. 딸이 있었다면 딸에게만 해 주었을 말이 있었겠지만 또 반대로 아들들에게 해주고 싶은 딸들의 이야기, 여자에 대한 이야기들이 있다. 그것을 서로 얼마큼 이해할지는 몰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