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진

진실을 알기 전에 우리는

by 꿈꾸는 momo

어린 시절, 의원보다 동네 사람들이 더 자주 드나드는 약방이 하나 있었다. 사람들은 약방의 할머니에게 진맥을 받고 그 진단과 처방을 신뢰했다. 사소하게 자주 아프니 나도 약방의 단골손님이었다. 언젠가부터 계속 배가 아프다 하는 날 데리고 아버지는 하는 수 없이 또 약방을 찾았다. 약방 할머니는 가게에 딸린 방으로 날 데리고 들어가 배를 꾹꾹 눌러보기 시작하셨다. 방에도, 할머니 손에도 약 냄새가 진하게 배어 있었다. 그때는 알약을 약절구에 직접 빻아 가루로 만들어 주곤 했다. 그 가루를 정사각형의 흰 약포지 가운데 놓고 삼각형 모양으로 접어주었는데 얇은 약포지를 하나같이 같은 모양으로 접어서 포개어 주던 할머니의 손놀림이 신기해서 내 차례가 아닌데도 집중하곤 했었다. 낯선 방 안에 가득한 쓴 내가 코로 들어오니 가루약을 먹기라도 한 것처럼 얼굴이 찡그려졌다. 쓰디쓴 가루약을 먹고 나면 허락되던 사탕 한 알이 순간 간절했다.

간이 부었네


우스개 소리가 아니라 그랬다. 곰이 두 손으로 가슴을 치며 '피로는 간 때문'이라 외치던 어느 제약회사의 광고가 그때도 있었으나 어린 내게 내려진 이 진단은 아버지를 많이도 당황하게 했던 것 같다. 아버지의 불안감은 나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그 날 나는 비장한 마음으로 일기를 썼다. 시한부 선고라도 받은 듯 암울하게 써 내려간 3학년짜리 꼬맹이의 일기를 보고 담임 선생님은 많이 웃었던 걸로 기억된다. 얼마나 비장했으면 지금도 그 날에 펼쳐 놓은 오른쪽 면의 일기장 내지가 머릿속에 선명히 각인되어 있다. 푸른색의 잉크로 인쇄된 일기장의 내지에는 눈사람, 우산, 해, 구름같이 날씨를 표시하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고 일어난 시간과 잠자는 시간을 기록하는 시계 그림이 바늘 없이 그려져 있었다. 또박또박 '간이 부은 날'을 기록하며 나는 환자복을 입고 창백하게 병원에 있는 나를 상상했다. 그때는 고통과 두려움보다는 동정과 연민이 느껴지는, 왠지 신비스러움을 가진 듯한 가녀린 소녀가 살짝 마음에 들기도 했다.


인근 도시의 소아과로 가는 길부터 멀미 때문에 힘들었다. 거기서 나는 흰색의 끈끈한 액체를 한 컵 마셔야 했는데 큰 일일지도 모르는 검사 앞에서 고분고분하게 그것을 받아들였다. 그러고 조금 지난 후 속옷만 입은 채로 큰 기계에 누웠는데 대기실에 있던 엄마는 촬영되고 있는 내 속을 밖에서 모니터링하면서 더 겁이 났다고 했다. 기계의 움직임과 의사 선생님의 지시에 반응하면서도 맨살에 닿는 기계의 차가움 때문인지 나는 와들와들 떨고 있었다. 쭉 뻗은 내 팔의 피부는 닭살처럼 돋아 털을 세우며 바짝 긴장해있었다. 촬영을 마치고 밖으로 나온 나에게 대기실에 같이 앉아 있던 어른들은 다들 한 마디씩 하며 걱정을 보탰다.


아이고 어린것이, 어쩌누...


대기실의 16인치 TV 브라운관에는 누군가의 시커먼 위가 꿈틀거리는 게 보였는데 다들 그걸 보고 있어서 그랬구나 싶었다. 엄마, 아빠, 그리고 나는 그저 말없이 앉아 있었다. 내 이름이 호명되고 진료실로 들어간 우리는 의사 선생님이 걸어놓은 촬영 사진을 보며 긴장 속에서 어떤 이야기를 기다렸다.


아... 변비라니. 의사 선생님은 장에서 탈출하지 못하고 남아 있는 두 개의 덩어리를 가리키셨다. 그때부터 우리 모두는 맥이 풀렸는데 나는 부끄러웠고 엄마, 아빠는 웃었다. 의료기술에 기대어 확인하지 않았으면, 그럴 수 없었던 시대라면 아마 나는 간에 좋다는 음식을 억지로 먹어가며 근거 없는 민간요법의 희생자가 되었을지 모르겠다. 약방 할머니의 오진이라는 것이 확증된 후 우리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고 외상(外傷)이 아니면 약방 할머니를 찾지 않았다. 하지만 진실을 알아차리기 전에 오는 망상과 두려움의 영향에 대해 확실히 경험했다.


건강검진 후 폐결절을 발견했다며 내 블로그를 보고 연락을 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대부분 확실치 않은 진단 상황에서 불안이 앞서 가장 긴급하고 절망적인 상태로 나에게까지 연락처를 남기곤 한다. 내가 진단해 줄 수도 없는 것을, 의사가 아닌 나에게서 안심할 수 있는 말을 듣길 원하는 것 같다. 궁금증의 끝에는 죽을지도 모를 자신의 처지를 불안해하는 극도의 긴장감이 이어져있다.


인생을 살며 시시때때로 마주칠 일들이다. 진실과 마주치기까지 불안이 주는 또 다른 세계를 펼쳐내지 말고 잠시 침묵할 필요가 있다. 오진이든 진실이든 확실한 증거를 찾을 때까지 말이다. 오진이면 다행이고 진실이면 받아들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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