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음의 증거
브런치를 알게 된 건, 남편 때문이었다. 무엇을 하는지는 몰라도 남편은 핸드폰 하나만 있으면 24시간을 독방에서 놀 사람이다. 그 작은 세상 안에 모든 세상이 다 있다고 하지만 난 옛날 사람이라 그런지, 촌 사람이라 그런건지 몰라도 쇠붙이나 기계같은 건 정이 안 간다. 가뜩이나 폰 화면만 쳐다보는 남편에게 화가 나 있는 판에 남편이 들이민 글은 시큰둥할 수밖에 없었다. '죽음'에 관하여 쓴 글이었던 것같은데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한참 손이 많이 가는 아이들을 키우며 지쳐있는 나에게 글을 내민 이유가 싸움을 거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에 반쯤은 허투루, 반쯤은 시기심으로 읽어내렸다. 글을 쓰는 걸 좋아하긴 하지만, 그래서 항상 그 주변을 맴도는 나였지만, 글쓰는 것이 무용하다는 생각은 육아를 인해 더 곤고해졌다. 내가 무슨 글을 써.
글을 쓸 용기가 생긴 건 무언가를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아주 절실해질 즈음이었다. 쌍둥이를 출산하며 발견했던 폐결절이 암덩어리라는 것이 확인되었을 때, 손가락 사이에서 빠져나가 버리는 모래알처럼 형체도 없이 홀연히 사라지겠구나 싶었을 때... 그렇다 한다면 나는 도대체 어떤 사람으로 평가될까, 그저 아들 셋 두고 젊은 나이에 가 버린 딱한 여자이지 않을까...
기록하고 싶었다. 아이들에게라도 나를 남겨두고 싶었다. 내가 사라진다 하더라도 아이들에게 잇닿은 엄마라는 존재를 보여주고 싶었다. 그렇게 글쓰기가 시작되었다.
처음엔 자기연민에서부터 시작된 글쓰기. 한 줄 한 줄 아무런 말들이 이어지고 문장이 되어갈 때도 긴 글은 힘들었다. 이러다 고작 몇 개의 글을 적고 그만이겠다 싶었는데 신기하게도 글쓰기는 나를 어떤 기억 속으로 마구마구 끌고 갔다. 대부분 어두운 기억이었다. 아주 오랫동안 방치된, 음습한 기운이 감도는 지하실 문을 열어야 했다. 그것은 모험이었다. 비밀스러운 감정들이 튀어나올 때마다 나조차 당황하며 때론 아무도 읽지 못하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참 신기한 일이다. 글을 쓰고 1년이 지났다. 100편이 넘는 글을 썼다. 그리고 나는 살아있다. 글을 쓸 수 없는 많은 이유들이 나를 붙잡았지만 글을 써야만 하는 한 가지의 이유가 나를 여기까지 오게 만들었다는 게 신기하다. 좋은 글이 아니라도 좋았다. 독자가 없어도 좋았다.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나를 살게했다. 내 억압된 감정들과 마주하게 하고 그것을 올라서게 하고 어느 순간 나는 그렇게 글을 쓰며 날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