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흔다섯, 당신의 생은...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자는 잠에 데려가소. 언제나 읊조리던 당신의 소원대로 며칠을 오락가락 하시다 자는 듯 돌아가샸다.
내사 아픈 데가 없으니까 개안타. 으이그~ 죽지도 안 하고 하루하루가 지엽다.
얼마 전 설에 찾아뵈었을 때 할머니는 그랬다. 아픈 데가 없어 다행이다 했지만 하루하루가 지겹다는 그 말이 왠지 애처로워, 누군가 오기를 바라듯 한 뼘쯤 열려있던 현관문이 눈에 밟혀 오래도록 먹먹했었다.
할머니의 두터운 손, 스으스으 이 사이로 습관처럼 내던 소리, 단골 화장품 가게, 단골 한약방, 어린 증손자가 갖고 싶다 해도 주지 않던 작은 강아지 인형... 할머니를 떠올리게 하는 모든 기억들이 차곡차곡 할머니에 얹어진다. 가볍게 한 줌으로 떠난 당신의 무게 위로... 이 땅에서의 안녕을 직감하며 한 순간에 자식들의 얼굴마저도 지워버린 할머니는 어쩌면 남은 자식들에 대한 걱정마저 지워버리고 싶으셨던 게일까. 어쩌면 그렇게 가볍게 떠나 걱정도 아픔도 없는 곳에서 웃고 계실까.
삶을 떠난 할머니가 남긴 재산은 아무것도 없다. 당신이 남긴 건 오직 남은 삶을 살고 있는 자식들 뿐이다. 아, 한 가지가 더 있네. 할머니 물건을 정리하며 아버지가 챙겨오신 그 때 그 강아지 인형은 결국 첫째의 손에 쥐어졌다.
남편의 오랜 병시중을 하는 큰 고모, 다리 수술을 해 움직이지도 못하는 둘째 고모는 빈소에도 보이지 않는다. 치매에 걸려 온전치 못한 작은 고모는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 눈치다. 택시 기사를 하는 작은 삼촌은 네가 벌써 마흔이 되었냐며 술이 되어 옛이야기를 하신다. 아버지는 조촐하게 준비한 빈소에서 띄엄띄엄 이지만 조문객들을 맞고 연락을 받으시고 일을 주관하시느라 바쁘다.
할머니가 95년의 세월을 사신만큼 늙어버린 자식들의 삶은 여전히 호락호락해 보이지 않는다. 그 무게가 커서인지 몰라도 할머니의 빈소에는 어떤 슬픔보다 묵직한 침묵과 어색한 대화와 고단함들이 떠다닌다. 어느 땐가는 죽음이 두려웠다가 슬픈 것이기도 했다면 이제는 죽음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진다. 할머니로부터 이어지는 그 인연의 어떤 끝에 서서 나는 생과 사를 바라본다. 살아 있어도 위태로운 생과 생 어느 사이에서 오늘은 쉽게 잠이 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