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별 일 아니었으면 좋겠어
손에 박힌 가시처럼 그냥 좀 아프고 마는 것도 아니고, 당장 빼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마음을 흔들게 할 만큼 부담스러운 가시가, 별일이 아니길 하며 조마조마하는 일이 또 생겼다. 지난 건강검진에서 담낭에 용종이 나와 추적검사를 하러 간 남편은 의외의 진단을 받고 소화기내과에 다시 진료예약을 해야 했다. 복부 초음파 결과 담낭의 용종은 그대로라 1년 후 재검진 하면 될 일이라 하는데 문제는 간이 좋지 않다는 소견이었다. 정확한 진단이 불가한 상황이지만 확실한 건, 이 알 수 없는 순간이 어느 때보다 우리 마음을 혼란스럽게 한다는 사실이다. 정말, 별 일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이십 대에는 별 일이 나와는 먼 일이었고, 삼십 대에는 별 일이 아니길 바라는 마음으로 어떤 일을 맞닥뜨리곤 했다. 그런데 사십 대부터는 별 일이 예삿일처럼 일어나는 것 같다. 나와 내 주변에는 축하할 일보다 위로할 일이 더 많아지고 축하받을 일보다 위로받을 일이 더 많아진다.
위로받을 일이 많아질수록 어떤 면에서 위축될 때가 있다. 첫째는 너무 쉽게 모든 결과의 책임을 네 탓이나 내 탓으로 전가하게 되는 일이고 두번째는 더 의지적이고 치열한 삶의 모습을 보여 주길 바라는 남들의 시선이나 요구를 견뎌내는 일이다.
어쩌면 두 문제가 같은 선상에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오늘 이 모든 실수를 남편에게 저질렀다. 단순한 걱정에서라기보다는 이 일이 나에게 미칠 여파에 대한 속상함과 짜증이 뒤섞인 감정인 것 같다. 이것 봐, 언젠가 당신에게 이런 일이 생길 줄 알았어. 당신이 갖고 있던 평소의 불규칙한 생활습관과 감정의 처리방식이 이런 결과를 만들지 않았겠어?하는 판단과 함께 이 일을 계기로 뭔가 달라질 태도를 기대하며 훈수같은 훈수를 놓았다. 물론 실제로는 하루종일 수분이라고는 커피 섭취가 전부인 것과 간식을 줄이라는 말 정도였지만 남편은 이미 비난의 감정이 묻어있는 내 말에 몹시 속이 상해버렸다. 그것이 얼마나 속상한 일인지 충분히 경험한 나임에도 이렇게 나오는 내 말이, 곧바로 미안한 마음이 되었다.
규칙적인 시간에 자고 일어나 물을 마시고, 건강한 음식을 적당히 먹고, 적당한 운동으로 체력을 키우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스테레스를 이겨내며, 다른 사람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으며, 즐겁고 보람있게 일하고 숙면을 취하는 하루를 사는 사람이 있을까... 가끔 그렇게 로봇처럼 정해진 메카니즘대로 사는 매일을 상상해 보기도 했다. 그럼 과연 건강하고 행복할까 하며... 모든 시나리오에서 완벽할 수 없기에 누구나에게 고통스러운 순간은 있을 법하고 어떤 형태로든 어떤 무게로든 우리가 결정할 일도, 무한 책임을 질 일도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너무 쉽게 남에게 온 고통에 대해선 결과론적으로 책임을 지우고 나에게 온 고통에 대해선 받아들이기 힘들어한다.
병을 이기기 위해 온갖 좋은 것을 동원하여 의지적으로, 철저히 몸을 관리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건 절대 쉽지 않은 일이다. 바닥까지 고통스러운 그 순간은 잠깐 철저하게 자기관리에 애를 쓰다가도 조금 나아졌다 싶으면 느슨해지는 것이 사람이다. 또는 이미 의지적인 것을 뛰어넘어 병이 그 사람을 지배할 때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이 무기력해지기도 한다. 아프면서도 느슨한 사람과 무기력한 사람을 향해 비난하는 시선은 애정인가 우월감인가. 어떤 고통 가운데 있는 사람의 처절한 절규와 노력은 연민과 박수를 받지만 그들이 쉬고 있거나 웃고 있으면 이상하다 여긴다. 고통 중에 있는 사람은 언제나 고통 가운데 있어야 할 것처럼, 그래야 연민과 위로가 아깝지 않은 것처럼...
우리가 많은 것을 선택할 수 있고 선택한 대로 살아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인생은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구나 싶다. 오늘 일어난 별 일이 그래도 별 일이 아니길 바라며, 무거운 마음을 달래러 뒷산을 잠시 올라갔다 왔다. 땀은 났지만 나무그늘이 주는 위로와 바람이 나뭇잎들을 흔드는 소리가 좋다. 무거운 마음을 차내 버리고 싶은지 오랜만에 축구를 하러 나간 남편이 아직 들어오지 않아 기다리는 채로 글을 쓴다. 평소 같으면 아이들 곁에서 잠들었을 나지만 오늘은 왠지 남편을 기다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