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쑥, 어딘가에 저장되어
어느 날 꿈에 말이다. 아주 잊고 살았던 초등학교 동기 현영이가 그때 그 모습 그대로 생생하게 나타나 나에게 뭐라고 한다. 아주 오래 만나온 사람처럼 낯설지가 않다. 너는 어찌 그대로니. 나는 꿈을 보고 있는 다른 의식으로 꿈속의 현영이에게 제삼자가 되어 묻는다. 아침에 깨어나면 꿈의 이야기는 사라졌어도 현영이 얼굴이 기억난다. 왜 갑자기 현영이가 꿈에 보였을까. 새까만 눈썹, 새까만 눈, 야무지던 말 그대로. 전화번호라도 안다면 당장 전화라도 해 볼 텐데. 아니, 전화를 하면 놀래려나. 반갑다는 인사 다음에 이어갈 말은 뭐가 되어야 할까. 나라는 사람도 가끔 누군가의 기억 속에 불쑥 나타나곤 할까. 그거 참 궁금해진다.
내게 중요하지도 않은 일들이, 중요하지도 않은 이들이, 중요하지도 않은 말들이 생각지도 못하는 순간에 불쑥 내 앞에 나타나곤 할 때가 있다.
여름엔 수박이 최고지. 어느 날, 강당에서 배구를 끝내고 썰어놓은 수박을 들며 하시던 동학년 부장님의 목소리. 너는 특별한 아이야. 유난히 날 좋게만 봐주던 윤경이의 그 말. 그런가 하면 표정 하나로 깊게 내 가슴에 상처를 남긴 이들이 툭, 맥락도 없이 떠오를 때가 있다.
그런 걸 생각한다면 사뭇 조심스럽지 않은가. 아무 생각 없이 뱉었던 내 말, 그냥 지어 보였던 순간의 내 표정과 행동들이 누군가에게 저장되어 맴돌지는 않는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