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어간다는 것

청춘은 정말 짧은 거로구나

by 꿈꾸는 momo

60이 넘은 우리 엄마도 아직 염색 한 번 안 하고 머리칼이 새까만데 얼마 전부터 새치염색이라는 걸 하게 되었다. 한두 개도 아니고 눈발이 앉은 듯 하얗게 뭉텅이로 흰머리가 보이니 영 나이가 들어 보였다. 그냥 늙는 대로 사는 거지, 흰머리도 괜찮아했던 나였는데 예상보다 너무 빨리 그런 날이 와서 당황했던 것 같다. 이렇게 늙어가는 거구나, 내 청춘은 이미 지나가버린 거구나 하는 서러운 생각이 들었다. 아직까지 나의 늙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마음이 안 되었나 보다. 무안한 마음이라도 감추어 보려고 염색을 시작한 것이 제법 귀찮다. 1년에 한두 번이나 가면 족할 미용실을 두 달, 길게는 석 달만에 찾아야 하니. 내 청춘이 이쁜 줄도 모르고, 귀한 줄도 모르고 흘려보낸 거 같아 내 청춘에게 미안했다가 그래 그게 청춘이겠지 한다. 꾸밀 줄 몰라도, 꾸미지 않아도 마냥 이뻐 보이는 청춘들을 보며 내가 미소 짓듯.


허기가 진다. 쟁반에 담긴 아몬드 사탕을 한 알 까먹으며 미용사가 권하는 자리에 앉는다. 책이 많은 미용실. 그나마 편안한 곳이다. 눈에 띄는 책을 고른다.

내가 누군지도 모른 채, 마흔이 되었다.


자라온 환경과 상황에 따라 왜곡되어 있는 자아상을 벗어나는 시기가 마흔 즈음이라는, 과거를 돌아보며 미래를 나갈 수 있는 중요한 지점이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 번역한 말이 자연스럽지 못해 몇 장 읽다 그만둔다.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박경리 유고시집이다. 그녀의 외로움에 대한 이야기,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 삶의 끝까지 짜고 짜 낸 이야기들이 묵직하게 가슴을 파고든다. 몇 편을 읽다 또 끊어진다. 시집을 내려놓고 옆에 있던 강훈의 산문집을 스윽 들춘다. 하필이면 한 끼에 대한 이야기다. 배가 고파진다. 그가 젊은 시절 끼니를 위해 많이 먹었다던 라면과 김밥 같은, 그 자극적이고 배부른 모든 한 끼가 다 맛있겠다. 라면 냄새가 나는 것 같다. 위가 감당해내질 못할 그 맵고 뜨거운 국물을 후룩 마시고 싶은 충동이 생긴다. 거기에 김밥은, 작가의 말처럼 어울리지는 않지만 같이 먹어줘야 할 것 같다. 라면과 김밥을 시키면 분명 둘 중에 하나는 남는 법이다. 위 작은 나에게는.


빨리 머리를 감고 싶다. 휴대폰을 만지작거린다. 요즘은 폰을 좀 쥐고 있었다 싶으면 손가락이 시큰거린다. 셋째 손가락이 아픈 걸 참다못해 병원을 갔더니 관절염이란다. 헛웃음만 나온다. 불편한가 싶다가 아프다고 말하기 시작하면 금방 끝이 나야 하는데 지루한 장마처럼 이 곳 저곳이 신호를 보낸다. 아직도 아프냐고, 뭐가 그리 맨날 아프냐고 짜증 섞인 말을, 하는 쪽이 아니라 듣는 쪽이 될 때의 민망함과 서러움을 숨길 수 없어 슬프다. 습기가 가득한 날들이 이어지고 호흡이 힘들다는 말을, 가슴통증이 계속된다는 말은 차마 못 한다.

숫자로 말한다면 누군가에게는 새파란 젊은것이 될 내가 늙어감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이 가소로울지 모른다. 그러나 어쨌든 서글픈 오늘이다. 옆에 있는 손님과 원장님은 80이 넘은 부모들의 요양원 생활과 건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자기도 모르게 훅 하고 꺾어지는 나이가 있다 하니, 자기 마음대로 안 되는 그런 나이를 자식들에게 짐 지우고 사는 노인이 되기 싫어 발버둥 치는 마음이 고스란히 이해가 되는 것 같아 슬픈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