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얻어지는 것은 없었네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라는 문구가 유행했었다. 참 멋진 말이었다. 하지만 그런 긍정의 마음으로 동기를 부여받고 시작해보면 '즐김'이 아닌 내 한계를 처절하게 '부딪힘'으로 좌절감만 맛보고 끝난다. 싸이가 말했었나. "귀를 움직이는 가창력은 기술이고, 마음을 움직이는 가창력은 예술이라"라고. '즐기는' 경지까지 가려면 완성된 기술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사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모든 영역에서 과연 그렇겠다 싶다. 그걸 생각하면 여전히 내가 잘하는 것은 잘해가려는 과정에 불과한 것 아닌가 하기도 하고. 지금 곧 잘하고 싶은 조바심도, 욕심도 내려놓게 된다.
어떤 용기가 불쑥 생겨 느닷없이 음악과로 전과(轉科)했던 대학 2학년. 오래전부터 로망이었던 악기를 하나 배울 수 있는 기회라 생각했었다. 다른 악기보다는 보편적이고 배우기 쉽다는 플루트를 선택했다. 다른 학과는 논문을 썼지만 음악과는 졸업연주회로 대체되었기에 4학년 때의 졸업연주회는 졸업성적과 연관되는 최종 목표이기도 했다. 음악을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은 다르듯, 좋아해서 시작한 악기가 그렇게 마음을 고되게 할 줄은 몰랐다. 적어도 졸업연주회에서 연주해야 할 곡목은 취미 삼아 연주하는 가벼운 멜로디와는 달랐다. 연습, 연습, 또 연습이었다. 하루를 쉬면 내가 알고 일주일을 쉬면 관객이 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악기를 하는 사람이든 운동을 하는 사람이든 연습은 곧 생명인 것 같다. 그 연습은 웃고 즐기는 수준의 것이 아니라 새끼 새가 죽기 살기로 날갯짓을 연습하는 것과 같다. 일단은 날아올라야 한다. 날 줄 알고 나면 어디든 마음껏 비행하듯, 일정 수준의 기술을 익혀야 자신만의 느낌을 살려낼 수 있었다.
플루트는 쉬운 것 같으나 쉬운 게 아니었다. 뭐든 그렇지 않겠냐마는. 아랫입술을 붙이고 관을 향해 내쉬는 숨이 진동하여 울림을 만들어내는데 그것이 응집되어 알맹이를 가지는 소리처럼 관을 흘러나와야 했다. 입술 모양이 잘못되어도, 호흡이 부족해도 소리는 새거나 힘이 없었다. 고음에서는 '삑사리'가 나기도 했다. 몇 번 '삑사리'를 경험하다 보면 고음에 닿기도 전에 입술에 힘이 들어가기도 했다. 그것이 절대 '삑사리'를 예방할 수 없는 기술인데 말이다.
그런데 참 웃긴 일이다. 연습한 만큼 실력이 쌓여가다 어느 순간 정지해 버리는 구간을 겪는다. 정체기, 권태기 같은 말을 붙여도 되려나. 연습은 힘들지만 어쨌든 연습량에 비례하던 실력이 더 이상 올라가지를 않고 머무를 때의 좌절감이란 견디기 힘든 순간이다. 그것이 혹, 다른 이들은 눈치채지 못하는 구간 일지 몰라도 스스로 부딪히는, 외롭고 고단한 시간이다.
만사가 같은 원리 아닐까 싶다. 혹독하게 무언가를 익히고 그것을 뛰어넘었을 때야 자신만의 관점이 생기고, 마음을 움직이게끔 하는 힘이 생기는... 그것은 시작과 끝이 정확하지 않지만 인생의 과업 가운데 피할 수 없는... 그래서 오늘도 나는 읽고 배우고 쓴다. 여전히 미완된, 습작들을 남기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