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름을 이해하게 된다
민결아~우리 장난칠까?
그래.
반달눈이 되어 키득거리는 쌍둥이 아들 녀석들은 이제 내 손을 벗어난 것 같다. 정돈된 집안은 욕심이다. 정해진 구역 외에는 낙서를 해 본 적이 없고 위험한 것에 관심이 없던 첫째와는 달라도 너무 다른 둥이들이다. 둘이서 힘을 합치면 못 할 일이 없다. 눈 깜짝할 사이에 일은 벌어진다. 정리된 장난감 통을 뒤엎거나 둘이서 매트를 들고 미끄럼틀도 넘어뜨린다. 새로운 공간이라고 만들어준 실내용 텐트는 거꾸로 뒤집고 들어가 논다. 새로 산 침대 매트에 보기 좋게 낙서를 해 놓고 깔깔거리는 녀석들의 장난은 날로 발전하고 있다. 물론, 이제는 해서는 안될 것과 될 것의 경계를 눈치껏 계산하고 행동한다. 혼날 것 같은 일은 한쪽이 중재하기도 한다. 우리 장난칠까? 안돼. 그러면 엄마한테 혼나. 뭔가를 하다가 심심하다 싶으면 둘이서 눈을 마주치고 찡긋 신호를 보낸다. 둘의 대화를 듣는 건 배꼽을 잡고 숨죽여 웃어야 하는, 커다란 재미기도 하다. 가끔 경계를 넘어서 호된 꾸지람을 듣기도 하지만, 그래서 슬픈 울음을 울기도 하지만, 그것마저도 아직은 귀여워 보인다. 네 살이니까.
쌍둥이를 키우며 독립된 한 존재에 대한 신비와 부모의 책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2분 차이로 태어난 이 쌍둥이는 각각 참 다르다. 한 녀석은 매우 독립적이고 한 녀석은 다소 의존적이다. 한 녀석은 새로운 것을 좋아하고 모험심이 강하지만 한 녀석은 새로운 것을 탐색하는 시간이 길다. 몸으로 먼저 탐색하는 녀석이 있고 눈으로 먼저 탐색하는 녀석이 있다. 이렇게 다른 기질이지만 항상 붙어 있고 붙어 논다. 서로를 질투하기도 하지만 아끼기도 한다. 아이들의 문제행동과 태도에 대해 주로 "부모의 양육태도와 방식"으로 평가를 할 때가 많지만 쌍둥이를 키우면서 "주어진 기질"의 영향력에 대해 관심 있게 보게 된다. 이렇게 다른 기질을 이해하고 기질에 맞춰 적절한 반응을 해 주는 일은 부모의 역량일 수 있지만 어쨌든 자녀의 모든 행동에 대한 책임을 부모에게 전가시키는 것은 옳지 않다. 선입견을 가지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첫째가 다섯 살 때, 어린이집에서 또래 친구에게 물려 온 적이 있었다. 아이들이 놀다 보면 그럴 수 있지 하고 넘어갔지만 오랜 시간 팔에 남아있는 이빨 자국을 보며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이 '부모가 어떻게 키웠길래'였다. 이 얼마나 큰 오해인지, 무는 아이를 둔 부모의 마음은 또 어떨지를 전혀 헤아리지 못한 것이다. 너무 쉽게 아이의 문제행동을 부모탓으로 돌리게 되는 우리네의 섣부른 판단. 그러다 쌍둥이를 낳았다.
어쩜, 내 의지와 훈육과는 달리 둥이들은 볼볼볼 기어 다니기 시작할 때부터 싸웠다. 똑같은 것을 줘도 서로의 것을 빼앗는 둥이들을 보면서 인간의 본성을 헤아린다.
싸움의 중재를 빨리 하거나 미연에 막지 못하면 가끔은 개? 가 된다. ㅜㅜ 서로를 의식하고 경쟁할 때부터 '물기'시작하던 이 싸움의 기술을 다스리느라 정말 고민이 많았다. 돌을 전후로 활약하던 이 기술이 잠잠해지는가 싶더니 이제는 도망가거나 끌어당기거나, 서로 이마를 대고 힘겨루기를 한다. 그러다 며칠 전, 사라진 '물기'기술이 발현되어 한 녀석의 등짝에 요란한 이빨 자국을 내놓은 이후로 다시 아찔한다. 딱히 누가 놀아주지 않아도 둘이서 잘만 노는 녀석들이지만 이럴 땐 정말 한숨이 난다. 아이를 키우는 것은 참 내 맘대로 안 된다.
가족 구성원 저마다의 기질과 가치관과 체력, 재력, 지력 등 너무나 많은 상황과 변수의 총합 또는 경우의 수를 다 겪어볼 순 없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만나는 아이들 또한 다양한 경우의 수를 뚫고 만난 독특하고 귀중한 존재들임은 알겠다. 내 에너지의 총량 또한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없으니 때론 욕심을 내려놓고 지켜보는 시간도 필요함을 알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