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함이 없는.
간밤에 가슴통증이 심해져 잠을 설쳤다. 그래도 이불 안에서 꼼지락 거리며 늑장을 부릴 수 있는 주말의 달콤함이 좋다....만 어둠이 걷히고 나면 끝이 난다.
심하게 아픈 날이 아니면 집안 구석구석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가습기 디스크도 닦아야 할 것 같고 이불빨래도 돌려야 할 것 같고 화장실 청소며 구석구석의 먼지도 닦아야 할 것 같다. 작년에 입던 아이들 옷 중 작은 것들은 한데 모아 처분하고 내 겨울 옷도 꺼내 보아야한다.
엄마 코피나. 닦아줘. 빨간 핏방울을 뚝뚝 떨어뜨리며 내 곁에 온 셋째의 코피를 지혈하자 잠도, 게으름도 달아나 버린다. 물감놀이를 하고 싶다는 첫째의 부탁해 도구를 꺼내주고 오줌 마렵다며 일어난 둘째를 소변기 앞에 데리고 간다. 어제 대충 물빨래를 해 놓은 아이 옷에서 풍기는 심한 지린내에 어쩔 수없이 빨래통을 들고 세탁기 앞으로 이동한다. 엄마 배고파요. 냉장고에 남아있던 김밥에 달걀물을 입혀 프라이팬에 익힌다. 찌릿찌릿한 가슴통증에 갈비뼈 사이 근육을 꾹 눌러본다. 왜 이러지. 요즘 부쩍 심해지는 통증에 당황스럽다. 하루하루 버티듯 몸을 챙기고 있는데도 입동에 들어선 냉기를 막을 수는 없나 보다. 헝클어진 실타래를 풀어보려 애써 매듭을 찾고 있는 나에게 남편은 stop!을 외친다. 치우지마! 아무것도 하지마! 그래. 하지만 둘째 얼굴에 번진 농가진에 연고를 발라줘야지. 약도 먹이고. 나가기 전에 양치는? 소변도 뉘이고 가야해. 여벌옷과 간식과 마스크를 챙겨 주고 나서야 멈출 수 있었다. 안녕. 엄마 잘 다녀올게요. 남편이 세 아들을 데리고 나간 후의 적막함. 아플 때의 쉼은 여유가 아니라 우울함을 준다. 폐암환우들의 까페를 열었다가 더 우울해진다. 실망, 두려움, 기대, 우울, 원망, 자책, 고통과 불안이 뒤섞인 환우들의 글들을 훑다가 하늘을 본다. 오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구나.
어제, 하늘을 올려다 본 아이가 말했다. 하늘이 땅이 되었어. 하늘이 갈라지고 있어. 구름이 가득한 하늘은 소보루 빵의 울퉁불퉁한 표면 같기도하고 아니면 절대 섞일 수 없는 화학적 반응을 보이는 어떤 물질들의 움직임 같기도 했다. 며칠 째 희한한 구름모습이 전시되고 있다. 정함이 없는 구름의 모양도, 구름을 담은 하늘도, 그렇게 인생같아서 뭉클하다. 햇살이 눈부시니 그래도 견딜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