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하기 싫었어
오늘 한낮 기온이 18도란다. 계절도 모르고 롱패딩을 걸치고 나왔다가 따뜻한 기운에 금세 나른해졌다. 앙상한 겨울나무처럼 차갑게 말라있던 내 몸에 햇빛은 반갑다. 무얼 먹어도 속이 편하지 않는 날이 계속이다. 위 점막에 생긴 상처들은 병기를 밝힌 이후에 더 발악을 하는 것 같다. 한동안 죽만 먹다가 기력도 없이 쓰러져 있다가 밥을 먹기 시작했는데, 다섯 숟갈을 넘어가면 과부하가 걸린다. 참으로 괴로운 날들이다.
괴로움을 이해할 바 없는 사람들은 평소에 가려 먹으면서도 위가 그러니 너무 예민해서 그런가 보다고 단정 짓기도 하고, 이걸 먹어라 저걸 먹어라 코치하기에 바쁘다. 이 정도는 괜찮다며 음식을 권하기도 한다. 다 짜증 난다. 소화액의 독하고 시큼한 그것이 마음마저도 단단히 독하게 만든다. 위장을 탈탈 털어 내시경이란 걸 한 후에 채워지는 음식물들은 내 몸의 일부가 되어주기를 거부하는 것 같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날의 연속이었다.
오랜만의 포근함에 신이 난 아이들은 한가한 산책길을 거닐고 아이스크림을 먹는다. 엄마 한 번 먹어봐요. 하고 내밀지만 전혀 먹고 싶지 않다. 맛있게 오물거리는 녀석들의 입이 귀엽다. 엄마~ 근데 대머리가 되었어요 아이스크림이. 녀석들의 재미있는 표현에 기분이 좋아진다. 잠깐 햇볕을 맞고 나서 온수매트를 70도나 올려놓고 누웠다. 어제의 불면을 비웃기라도 하듯 졸음이 몰려오더니 단박에 달콤한 낮잠행이다.
괴로움도 한낮의 짧은 꿈이라면 좋겠다. 대머리가 된 아이스크림을 핥으며 입안도 즐거워지는 날들이 얼른 오면 좋겠다. 그래도 언 땅 저 밑에서부터 끌어올려 마른 가지에 싹을 틔우듯 봄은 올 거다. 내게도 봄은 올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