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다고 생각했던 많은 것들
어릴 때부터 수없이 나무를 그려왔지만 정작 시간을 들여 나무를 자세히 관찰한 일은 없었던 것 같다. 크레파스를 쥐었던 꼬맹이 시절엔 기다란 나무 기둥 떡하니 그려놓고 그 위에 동그랗게 초록 머리를 씌워주면 그만이었다. 해를 거듭하면서 동그란 초록머리는 파마머리처럼 변했고 나무 기둥에는 가지가 몇 개 더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다 가지의 개수와 굵기가 변하고 나뭇잎의 채색도 디테일 해진다. 그럴싸하게 보이는 나무가 한 그루 탄생한다. 언제나 비슷한 나무다. 하지만 이렇게 나무를 그리면 아이들은 "우와 우리 선생님 그림 진짜 잘 그린다!"하고 감탄한다. 잘 그린 나무는 우리 모두의 머릿속에 어떤 형상화된 이미지로 고착되어 있는 것일까. 내가 아주 틀렸는데 말이다.
차에서 잠든 아이들이 깨길 기다리며 문득 위를 올려다보았다. 열린 선루프로 가로수 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내가 그린 나무랑 참 다르다. 잘 그린 나무랑은 참 다른, 어쩌면 참 못생긴 나무다. 큰 나무줄기에서 뻗친 굵은 나뭇가지들은 댕강댕강 잘려 나가고 거기서 돋은 새로운 가지들은 시위라도 하듯 바늘처럼 솟아나 있다. 할머니 반짇고리에서나 보았음직한 장면이다. 손 때 묻은 뭉툭한 명주실에 마구 꽂힌 바늘들 같다. 지금 보이는 나무를 그대로 그리면 잘 그렸다고 말하는 이는 몇이나 될까. 펜과 종이가 있었으면 당장 그려보았을 텐데...
문득, 내가 안다고 생각했던 많은 것들, 내 주변에 존재하는 사물과 사람들에 대해 나는 얼마나 제대로 알고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것들은 의식도 못한 채로 지나치기도 하며, 어떤 것들은 한순간의 정보를 전체로 인식해 버리기도 하며, 어떤 것들은 내가 원하는 것으로 왜곡되고 변형되어 기억되기도 하며...
‘그것’이라 명명하고 이미지화된 모든 존재들에 다시 한번 머리를 숙인다. ‘그대’들에 대해서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