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아들만 셋
딸이 없다는 것은
남자 냄새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것이기도 하고
남자의 언어에 외로운 것이기도 하고
나의 갱년기를 이해받지 못한다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딸의 갱년기를 걱정하는 것은
할머니가 된 나의 엄마이고
쑥을 캐고 나물을 캐고 참기름을 짜 주는 이도
나의 엄마인 것을.
문득 엄마는 내 갱년기를 걱정했다. 하긴 꼬박꼬박 주기를 지키던 생리주기가 들쑥날쑥하던 참이기도 했다. 엄마를 닮아 일찍 그럴 거라 했다. 평생의 개수가 정해져 있다는 난자를 과배란으로 몰아낸 적도 있으니 나의 폐경은 참 이르기도 하겠다. 이 귀찮은 여자의 일을 얼른 털어버리면 좋겠다 싶었는데 그게 아닌가 보다. 호르몬의 변화는 면역계에 신호를 보내고 있다. 아침잠이 사라진 것도 이 때문일까. 뒹굴거리며 내 곁에 자고 있는 녀석들의 머릿결을 쓰다듬으며 토닥거려 본다. 이 녀석들은 엄마라는 여자를 한 번도 이해 못 하겠지? 딸이 없다는 것에 대해 처음으로 생각에 잠겼다. 딸이 없으면 엄마가 외롭다 그러는데, 정말인가. 딸이 있으면 갱년기는 무사한 것인가.
그러면서 내가 딸이었을 때는 어땠나 싶다. 내가 엄마를 이해하기 시작한 건, 딸이어서가 아니라 엄마가 되고부터가 아니었나. 하지만 이해하면 뭐하나. 제 자식 키운다고 엄마는 늘 뒷전이 된다. 생각날 때 전화 한 통 하고, 옷이나 사다 드리고, 아이들이나 자주 데려가면 다행이다. 딸에 대해 생각하다 결국 엄마를 생각하게 된다. 엄마가 너무 슬프다. 엄마가 너무 고맙다.
없는 딸을 만들어 낼 수도 없는 것이고, 나는 아들만 있는 친구랑 갱년기 극복 프로젝트를 세워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