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일이 생겼을 때
김수연 님, 이연우 님, 최영희 님, 모회정 님, 엑스레이 찍으러 가시죠.
새벽 6시가 되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이송원들의 호명으로 하루가 시작된다. 아니, 이미 뒤척임 속에서 지리한 고통을 느끼며 시작하는 병실의 하루는 시작과 끝맺음이 불확실하다. 하지만 다들 이송원이 부르기 전에는 커튼을 열거나 몸을 세우지 않는다. 영상실을 가리키는 노란 선을 따라 몽롱하게 따라가는 새벽.
수술 날짜가 잡혔고 다시 입원을 했다. 초면이 아니라 그런지 이송원들이 반가웠고 이번엔 꽤 편안했다. 새벽부터 몇 호실의 아무개님을 호명하는 이들은 도대체 하루 종일 몇 명의 환자를 대할까, 엘리베이터는 몇 번 탈까. 괜한 것이 궁금했지만 직접 물어볼 용기는 나지 않았다. 그들에게 질문할 만큼 나의 상황이 여유롭지는 않겠다는 객관적인 판단에서였다. 침묵이 흐르는 엘리베이터 안에서는 서로의 시선이 부딪히지 않는 지점을 잘 선택해야 한다. 이번엔 버튼 대신 거울에 비친 나를 멍하니 응시했다. 아직, 암에 걸렸다고 하기엔 너무 젊다. 일부러라도 더 당당하게 걸어보았다. 갈 때는 저 혼자 알아서 갈게요. 다음 일정으로 빽빽할 그분을 먼저 보내드린 것은 잘한 일이라 여겨졌다. 어쨌거나 아직은 수술 전이고, 암이 아닐 가능성도 여전히 남아 있다.
아침 첫 수술이다. 어제보다 훨씬 비장한 기분이 되었다. 휠체어에 실려 대기실 앞으로 갔다. 담요가 주어졌고, 서명을 했고, 몇 번의 확인 절차를 밟았다. 수십 명의 환자들이 닫힌 수술실 문 앞에서 열을 지어 대기했다. 마치 출발선에 선 선수들처럼 말이다. 모두의 결말이 같지는 않겠지. 수술실 문이 열렸다. 어느 수술방으로 들어갔다. 무서웠다. 수술복을 입은 의사들이 눕는 걸 도왔고 왼쪽 팔을 위로 올리라 했다. 좌상엽에 있는 결절을 떼어 간이 검사를 한 후 암이라 판단되면 상엽 전체를 절제하는 수술이 될 거다. 수술이 금방 끝날 거라는 기대로 눈을 감았다. 수술 조명이 눈부셨다. 내 떨림을 아는지 그들은 지체 않고 호흡기를 갖다 댔다. 자 숨을 크게 들이쉬어요. 두어 번 들이쉬자 희미해지는 의식.
눈을 떴을 때는 침대에 실려 있었다. 병실로 이동하는 듯했다. 몽롱했고 신음이 흘러나왔다. 온몸이 부풀어 오른듯했다. 마취를 깨야해요. 절대로 잠들지 못하게 계속 말을 거세요. 보호자에게 몇 가지를 당부하는 간호사의 말은 귀에서 맴돌고 나는 자고 싶었다. 남편이 나를 부르는가 싶더니 얼굴을 툭툭 건드렸다. 잠이 드는가 싶으면 심박 측정기에서 경고음이 울렸다. 남편은 부은 발을 주무르며 말을 걸었다. 자기야! 자기야! 자면 안 돼. 어이쿠 자기야. 생전 처음 보는 내 모습에 남편은 어쩔 줄을 몰라하다가 헤롱 거리며 눈을 감는 날 보고 살포시 웃었다. 나도 살포시 웃었다. 내 의지와 달리 반응하는 지금의 상태가 우스웠다. 이게 무슨 일이야 여보. 말을 하고 싶었지만 말이 나오질 않았다.
수술 당일부터 3일간은 이송원의 도움이 절실했다. 걸을 수가 없었다. 조금만 자세가 달라져도 고통스러웠다. 검사실로 향하는 도중 휠체어가 턱을 넘을 때마다 통증에 예민해져 눈을 질끈 감았다. 나는 암환자였다. 떼어낸 조직이 악성으로 판명되어 상엽 전체를 절제했다. 그제야 그 사실을 제대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어떤 가능성이 열려있을 때보다 훨씬, 마음은 편했다. 내 등에 비수처럼 꽂혀있는 흉관의 무게와 고통이 익숙해질 즈음, 나는 다시 이송원들을 제정신으로 마주했다. 그분들에게는 내가 환자였지만 나는 이송원들이 내 환자라도 되는 냥 만나는 분들의 상태를 체크하고 있었다. 가령, 지금 그분이 느끼는 일의 피로도, 감정상태, 말에서 나오는 그 사람의 에너지... 무릇 자기 살기가 가능한 상태라면 이렇게 또 주변이 보이기 시작하는구나. 마약성 진통제를 의지하며 하루를 버티는 동안, 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선택하거나 고작 이렇게 주위를 관찰하며 시간을 보냈다.
매일 나를 관리해 주는 간호사들의 손길과 비슷한 처지의 환우들이 있는 병동의 생활은 오히려 견딜만했다. 하지만 퇴원 후의 시간은 견디기가 힘들었다.
요새 몸은 좀 어때? 사람들은 가끔씩 내 안부를 묻는다. 공동의 일에 열심을 내지 못하고 슬그머니 빠져 있는 나를 아쉬워하는 마음일 수도, 정말 걱정이 되어서 일수도 있다. 가끔씩은, 나는 너처럼 안 그래서 다행인 마음이 느껴질 때도 있다. 그게 알아차려지는 게 싫다. 언젠가 당신도 녹아내린 아이스크림처럼 허물어지는 날이 올 거라, 누구나 끝은 그런 거라 소리 없이 대답한다. 이런 고까운 마음이 생기는 게 더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