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싸워야 할 터널이 남아 있었다
아이가 퇴원하던 날까지 나는 매 순간의 감정을 여러 사람들과 공유했다. 아이가 먹는 모유량이 늘어날 때도, 장루를 교체할 때의 곤란함도, 담당의사의 소견도... 아이의 변화 하나하나에 다른 이들도 동일한 감정을 느끼고 반응해 준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면 너무 외로워져서 그냥 그렇게 믿었던 것 같다. 생사의 갈림길에 있던 절박한 순간을 지나, 아이가 백일 즈음 장루를 복원하는 수술을 했다. 이제 모든 게 완벽해졌다고, 그간 함께 응원해 주었던 당신 덕분이라고, 평범한 일상을 힘 있게 잘 살아가겠다고 작별인사 같은 걸 했다. 터널을 빠져나온 줄 알았다. 나만의 터널, 혼자 가야 하는 긴 터널이 남아 있음을 몰랐다. 그때부터 시작이었는데...
아이는 하루에, 많게는 30번씩 묽은 변을 보았다. 나는 눈만 뜨면, 아니 밤 중에도 기저귀를 갈아야 했다. 잦은 변에 발진이 생겼고 악화되지 않기 위해 애써야 했다. 일회용 기저귀가 아닌 천 기저귀를 썼다. 물티슈 대신 거즈를 따뜻한 물에 적셔 닦아냈다. 온갖 발진 크림을 다 썼다. 대장이 없는 아이의 변은 냄새는 없었지만 치우기가 곤란했다. 아이의 엉덩이에서 찍 변을 내뿜는 소리만 들리면 자다가도 벌떡 벌떡 일어나 졌다. 내 귀가 예민한 건지, 엄마라서 그럴 수 있었던 건지 모르겠다. 대충 물티슈로 닦이고 기저귀를 채우자 싶다가도 아이의 붉은 엉덩이가 심해질 때면 내 탓 같았다. 덜 깬 눈을 비비고 일어나 따뜻한 물을 떠서 거즈를 적시고 있으면 묵직한 몸이 흔들거렸다. 물론 아이도 요란한 기저귀 갈이에 잠이 깨 칭얼댔다. 칭얼대는 아이를 다시 재우고, 나도 다시 곁에 누웠다. 몸은 바닥으로 꺼져가는 것 같은데 정신은 산란했다. 진실로 피곤한데 잠이 들지 않을 때면 수도 없이 스스로를 재촉하고 있었다. 아이가 다시 변을 보기 전에, 다시 깨기 전에 자두지 않으면 하루가 어려울 것이다. 매일 밤이 힘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보면 밤중에 간 기저귀가 예닐곱 개쯤 쌓여 있었다. 시간이 정해져 있었다면 좀 더 견딜만했을까. 그 끝을 알 수 없어 더 괴로웠다. 세상에 혼자 덩그러니 남아있는 듯한 느낌을, 잠을 깨던 어둠 속에서 자주 느꼈다.
"병원에 있었을 때를 생각하고 감사해." "아이가 잘 크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이야." "애 엉덩이 좀 짓물러도 되니까 대충 해." 하는 조언들은 하나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아이의 밤 기저귀는 두 돌 이후로 중단되었고 하루 배변 횟수도 점점 줄었다. 하지만 작은 소리에도 잠이 깨는 습관은 불면증으로 이어졌다.
그런 내게 둘째가 생겼다. 그것도 쌍둥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