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에 보낸 사연

에어프라이어를 받았다

by 꿈꾸는 momo

가끔씩 라디오에 사연을 보낸다. 욕심 내었던 공모전에 떨어지고 마음이 헛해지면, 추스르며 하는 일이다. 여전히 부족한 글이구나, 부족한 나이구나 하면서 쪼그라들었다가도 살짝 자신감이 생긴다고나 할까. 글이 당첨되었다는 것도 고맙고, 살림 장만하는 것도 재미있다. 받은 에어프라이어는 아이들 간식을 만들 때 잘 쓰고 있다.






뭣도 모르고 일찍 결혼을 했다. 내 나이 스물다섯이었다. 수줍어서 늘 볼이 발갛던 날 두고, 친구들은 미니스커트 한 번 못 입고 죽을 거라 농담을 하곤 했다. 연애라곤 할 줄도 모르고, 이성 앞에선 그저 숙맥이던 내가 누구보다 먼저 시집을 갈 줄은, 나 역시도 상상 못 한 일이다. 어찌 됐건 뭔가에 홀리듯 그렇게 결혼을 했다. 등이 넓은 한 청년에게 그냥 풀썩 의지하면서 말이다.

고작 800만 원을 가지고 시집을 갔다. 예물도 없었고 예단도 없었다. 그러고 보면 어른들을 찾아뵙는 것에도 무감각하던 나를 단박에 받아주신 시어른들이 다시 한번 고맙다. 혼수라고 해 간 것들은 죄다 싸구려들이었다. 주변에 시집간 친구가 없으니 정보도, 보는 눈도 없었다. 직장과 집만 오가며 단순한 삶을 살던 내 한 달 소비 수준이 40만 원 정도였으니 살림을 장만하러 다니는 것이 꼭 소꿉장난하는 것처럼 재미있게만 느껴졌다. 돈도 써 본 사람이 잘 쓴다고, 내 눈에 새 것은 다 좋게 보였다. 우리는 무난한 것들 중 가장 값싼 가구들을 골라 돈을 아꼈고 남은 돈 얼마는 후배 대학 등록금에 써달라 모르게 부탁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16년이 흘렀다. 우리의 세월과 함께 하던 세탁기며 냉장고도 고장이 나고 얼마 전 새 것으로 바꿨다. 식구도 다섯으로 늘어났다. 아직 아이들이 어린 탓에 장난감이며 옷가지며 책들로 세간살이가 점점 늘어난다. 올해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첫째의 책상과 침대를 마련해주며 결국 신혼 때 장만했던 옷장을 버리기로 했다. 합판에 시트지를 붙여 만든 옷장은 이제 가구점에서 구경할 수도 없는 물건이다. 그래도 겉이 멀쩡한 옷장을 버리려니 아까워 혹시나 하고 무료 나눔으로 중고 장터에 올려보았다. 분해해서 버리는 것도 수고와 돈이 들어가는 일이었기 때문에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서로 좋은 일이었다. 남편이 중고장터에 올리자마자 업체에서 가지고 간다는 연락이 왔다. 하지만 약속된 날짜가 지나도 소식이 없었다. 얼른 옷장을 들어내야 집안 정리가 될 텐데 말이다. 남편은 어차피 돈 주고 버려야 하는데 분해하고 치우는 것도 일이라며 3만 원을 주며 나눔을 한다고 다시 수정했다.

‘정말, 돈을 주는 건가요?’
바로 채팅창에 연락이 왔다.
‘네, 그렇습니다. 어차피 버려도 돈이 드는걸요.’
‘네, 그럼 내일 가지러 가겠습니다.’

약속된 날, 9자의 옷장을 가지러 세 분의 아저씨들이 오셨다. 옷장을 하나하나 꺼내가는 아저씨들을 구경하며 폴짝이던 네 살배기 아이는 “민효가 쓰는 건데, 왜 들고 가는 거야?”하고 묻는다. “민효보다 필요한 사람이 들고 가는 거야.”

싸구려 옷장이지만 우리 가정의 출발과 함께 했던 물건을 떠나보내니 약간 섭섭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소박하지만 행복한 세월이 고스란히 담긴 물건이라 그런가 보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옷장을 들고나가는 분께 사례비를 드리며, 남편은 어디다 쓰실 거냐고 살짝 여쭈었단다. 자기가 사용하려고 한다며, 정말 돈까지 주는 거냐는 아저씨에게 남편은 만원을 더 얹어 드렸다고 했다. 날씨도 추운데 세 분이나 오셔서 무거운 짐을 싣고 가는 게 왠지 짠했다면서. 안방을 차지하던 옷장이 떠나고 나니 휑하다. 이로써 신혼 때 샀던 물건들과 모두 작별이다. 아쉽지만 이제 또 다른 것들로 채워지겠지. 옷장이 떠난 자리, 묵은 먼지들을 닦아내며 새롭게 출발한다. 떠난 옷장의 새로운 주인에게도 행복한 출발이었으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몸이 아프다는 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