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과 다행
어느날 아침이었다. 아니, 그날은 결혼기념일이었다. 우리 결혼한지가 벌써 16년이 지났나 하며 뭐라도 같이 먹으러 갈까 물어오던 남편에게 맞장구쳐주지 못하고 한숨으로 대답했던 전날 밤 우리는 서로에게 또 벽을 쳤다. 다음날 시큰둥한 마음 그대로 인사도 않고 출근을 했다.
어스름이 깔린 스산한 겨울아침의 온도에 운전석과 핸들의 열선을 최대로 세게 틀고 도로를 달렸다. 결혼이후의 내 삶을 떠올리며 한참을 달렸던 것 같다.
툭! 갑자기 하늘에서 시꺼먼 물체가 뚝 떨어졌다. 빠른 속도로 떨어진 그것 위로 순식간에 내 차가 지나왔다. 악!! 시각정보가 반응하는 시간차를 뒤로 심장이 벌렁거렸고 반사적으로 핸들이 옆으로 돌아갔다. 이미 지나쳤는데도 말이다. 내 옆을 지나가는 차가 없길 천만다행이었다.
하늘을 빙빙 나는 독수리 떼가 많은 곳이었던 걸 추측할 때 그 커다랗고 시커먼 물체는 독수리로 짐작이 되었다. 독수리가 하늘에서 떨어질 확률은 얼마인가. 왜 떨어졌을까. 그것도 내 앞에서. 나도 어쩔수 없는 이 기이한 일에 입을 다물지 못하며 이 사실을 먼저 전한 이는 결국 남편이었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울먹거리는 내게 그래도 다행이라고 토닥여준 것도 남편이었다.
살다보면 겪는 불가항력적인 일을 오늘도 겪었다. 남편과 세 아들은 양성판정을 받았고 나만 음성으로 나왔다. 어디서, 어떻게, 언제 걸린건지도 모르고 우린 며칠을 지내온것 같다. 틈만 나면 내 볼에 입을 맞추며 사랑해하고 속삭이는 막둥이 녀석까지 다 확진되었는데 네 남자들 틈속에서 나는 또 어떻게 다행일 수 있는지.
혼자 빈집에서 밤을 보낸다. 엄마가 안 걸려 다행이라고 말하는 첫째의 말에 울컥하고 쿨하게 손 흔드는 둥이들의 모습에 울컥하고 세 아이를 격리기간동안 오롯이 돌봐야할 남편의 씩씩함에 울컥했다.
눈을 감아도 잠이 오지 않는다. 하늘에서 새가 떨어질 확률만큼 제대로 좋은 일도 한번쯤 일어나주면 좋을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