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다
아이들을 데리고 엄마집에 왔다. 참 오랜만이다. 넓은 데서 맘껏 뛰놀고 꽃씨도 심자하고 왔건만 날씨가 샘을 낸다.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더니 우박이 떨어졌다. 집안에만 있으니 그야말로 갑갑했다. 할머니가 건네준 믹스커피 탓인지, 애들 먹고 남은 반찬도 싹싹 먹으라는 성화에 억지로 숟가락을 움직여서인지 체기가 느껴졌다. 체기에 시작된 두통은 한기를 몰고오고 난 앉아있기도 힘들어 이불속에 콕 들어박혔다.
늦은 오후의 햇살에 밖을 나왔다. 사그라지지 않는 두통을 달래기 위해 이불을 박차고... 바람은 찼다. 볼을 때리는 바람을 맞으며 걸었다. 추웠지만 상쾌했다. 차가운 감각때문인지 두통이 사라진 것 같았지만 여전히 뇌를 관통하는 듯한 지끈거림이 느껴졌다. 자주 가는 언덕길을 올랐다. 꼭대기의 터에는 관리하지 못한 운동시설이 으스스한 분위기를 내며 버티고 있었다.
입고 있는 외투 안에서 뜨끈한 열기가 느껴졌다. 갑갑증이 사라지지 않아서 신발을 벗었다. 양말도 벗었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에는 해를 지난 솔잎들만 가득했다. 아픈 것도 모르고 추운 것도 모르고 맨발로 지압길을 걸었다. 발바닥에 느껴지는 자극이 머리끝까지 쭈욱 전해지는 것 같았다. 한바퀴,두바퀴,세바퀴... 갑갑함과 시원함이 3월의 꽃샘추위 속에서 맴을 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