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하는 마음
90이 된 외할머니가 성경 66권 필사를 끝냈다고 하셨다. 두꺼운 스프링 노트가 일곱 권이라 했다. 외할머니가 개종을 하신 게 6년 전이니 6년 동안의 작업인 셈이다. 방 안 작은 책상 앞에서 시간을 보내곤 하시던 할머니의 뒷모습이 생각났다.
할머니는 쓰면서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낯설고 희한한 문체와 낱말들은 이해가 되셨을까. 중졸이라는 학력을 가진 할머니에게 읽고 쓰고 배운다는 건 어떤 의미였을까. 나는 침침한 눈을 깜빡거려가며 책상 앞에 앉아있는 할머니가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그래서 나도 필사를 시작했다. 성경 한 장을 쓰는 것도 꽤나 많은 시간이 들어서 한 달이 다 되어가는데 노트 5장을 못 넘겼다. 필사를 한다는 건 때로 문장을 그대로 옮기는 기계적 행위에 불과해 보이지만 한 문장 한 문장이 오롯이 내게 건네는 경건한 힘이 있는 것 같다. 위선과 기만의 신자들이 건네는 어떤 말보다 더 영적이고 명쾌하다. 고대에 율법을 필사했던 사람들이 목욕재계를 하고 펜을 들었다고 하던데, 따라 쓰는 것만으로도 왠지 경건해지는 느낌이다. 정성이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