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길

by 꿈꾸는 momo

완연한 봄이다. 사람이 없는 뒷산을 오르며 호흡을 깊이 해 보지만 명치에 뭐가 걸리기라도 한 듯 갑갑한 속은 진달래를 보아도, 제비꽃을 보아도 감흥이 덜하다. 솔숲 나뭇가지 사이로 비치는 햇살과 파란 하늘이 허락되는 순간마저도 나는 생기를 잃은 노인처럼 물끄러미, 어떤 부끄러움도 잊고 자빠져 앉아 있듯 그렇다. 기운이 없다. 마음이 그렇다.


이 순간 눈에 들어오는 것은 온통 잘게 부스러져 바스락 먼지를 일으키는 철 지난 낙엽들이고 마른땅에 사람들이 걷고 걸으며 다져진 길이다. 한 명 두 명, 지나던 누군가의 체중에 다져지고 다져진 단단한 길, 군데군데 소나무 뿌리가 드러나 걷는 이들의 지지대가 되어주는 길. 어쩌면 길이 될 거다 해서, 되고 싶다 해서 된 게 아니라 어떤 이의 처음 발길과 두 번 발길이 모여서 이룬, "내가 했다." 자랑할 수 없는 수만, 수억의 시간과 사람이 만든 길... 이제 쓸모를 다했다 싶은, 생을 마감한 존재들이 바스러진 흔적의 길... 어쩌면 그 최후조차 알지 못하고 내려앉았을 길이다. 우리 인생도 그럴까... 때로는 꽃을 피우며 아름답던 시절을 지나, 그래서 자신의 최후를 살필 겨를도 없이 환하던 그 순간이 오랠거라 착각하다가 비우고 떨어질 때쯤 허무하다 말할까.

그 허무를 일찍이 알았던 사람들은 시를 쓰고 노래를 불렀다. 김광석의 노래를 유난히 사랑하는 사람이 내 옆에 있었을 때, 나는 때때로 동굴 속으로 숨어 버리는 그의 고립을 참을 수 없이 미워했다. 어쩌면 그의 고뇌와 감정을 알아차리지 못해서, 이해하지 못해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알아차린다고 한들 이제 무엇하나 싶다. 한 사람을 제대로 사랑하는 일은 땅이 다져지도록 아프고 단단해져야 할 일임을, 뼈저린 훈련이 필요한 일임을, 그리고 최후까지 어떻게 될지조차 모른 채 흘러가는 일임을 아는데... 잘잘못을 따지는 것조차 이제 무의미해진다. 그저 그가 들어간 동굴 속에서 고립이 아닌, 회복이 되어 나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냥 본다. 이렇게 말하면 내가 대인배인 듯 보이지만 실상은 전혀 다를 것이고.


미끄러운 길에서 울며 나를 찾는 아이의 손을 잡는다. 나조차 미끄러질 수도 있지만 내 손을 의지하는 이 아이는 나를 어떻게 사랑하고 있을까... 그렇게 아슬아슬하게 산을 내려왔다. 가쁜 숨과 열기를 머금은 채 길을 보고, 밟고 왔다.




3년 전인가 보다. 이 글을 썼던 것이. 아직 네 살배기 아이들을 데리고 뒷산을 오르겠다고 오기를 부렸었네. 남편은 함께 있으면 답답하고, 없으면 화나는 존재였던가. 혼자서 어쩌자고 셋을 데리고 산을 오를 생각을 했을까. 그때의 아슬아슬한 마음이 아련하게 느껴진다.


첫째와는 종종 정상까지 올랐지만 그 후로도 둥이들은 정상까지 가본 일이 없었다. 정상이라고 해봤자 어른 걸음으로 40분 정도 걸리는 낮은 산이지만 아이들에게는 가파르고 미끄러웠고 얼마 못 가 업어달라고 징징댔다. 어제, 처음으로 둘을 데리고 정상을 오른 후 오늘은 셋을 데리고 완벽한 산행을 마쳤다. 한 번도 투덜대거나 짜증 부리지 않고서 말이다. 셋은 숲을 탐험하는 모험가가 되어 낙엽 속에 숨어 있는 도토리를 발견하고 나무뿌리가 만들어놓은 자연적인 계단에 감탄하며 촐랑거렸다. 썩은 나뭇가지는 마녀의 지팡이가 되기도 하고 까마귀는 길을 안내해주는 친구가 되었다. 쉴 새 없이 이야기를 해가며 정상까지 오른 아이들의 손에는 전리품 같은 자연물들이 가득했다.

이제 세 아들과 함께 산에 오르는 것은 더 이상 힘든 일은 아니다. 즐거운 일이다. 3년 후에는 또 이 길을 걷는 길이 어떤 의미로 다가올지 궁금하다. 그때 다시 열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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