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에 대하여
우리 가게 방 한 칸에 하숙을 하던 고등학생 언니가 코피를 펑펑 쏟으며 문을 열던 날, 나는 고작 아홉 살이었다. 흰색 패딩을 입은 언니는 몸을 숨기듯 내 옆으로 들어왔는데 방바닥에 배를 깔고 반쯤 졸며 숙제를 하고 있던 나는 잠이 확 깼다. 언니가 몰고 온 바람은 참으로 찼다. 얼마 후 가쁜 호흡으로 소리를 지르며 키 큰 오빠 한 명이 가게문을 열었다. 언니를 찾는 소리가 들렸다. 장사하는 가게라며 엄마가 진정시켜 돌려보내고 나서야 언니는 고개를 들었다. 언니의 얼굴은 엉망진창이었다. 코피가 범벅이 되어 흰색 패딩에도 묻어있었다. 피를 보고 나서 내 심장은 진정이 되지 않았다. 엄마와 언니들이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 있을 때도 내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두려움으로 온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폭력에 대한 일종의 거부감과 두려움이 시작된 것이. "엄마, 왜 싸우는 거야? 크면 저렇게 되는 거야?" 결국은 무서워서 울음을 터뜨린 나를 엄마가 다독이셨고 나는 엄마의 무릎을 베고야 잠이 들었던 것 같다.
이 세상은 그랬다. 약한 자가 있으면 강한 자가 있었고, 때리는 자와 맞는 자가 있었다. 분노하는 자가 있고 피 흘리는 자가 있으며, 도망치는 자와 쫓는 자가 있었다. 나는 그 폭력의 잔인한 과정과 결말을 견딜 수가 없었다. 할머니 집 골목길에서 밤마다 다투던 남녀의 목소리와 흉기를 들고 아버지를 찾으며 문을 부수던 삼촌의 목소리는 내 유년기의 공포였다. 대학생이 되어서도 나는 맞고 때리는 소리만 들으면 잠을 못 잤다. 나는 자주 가위에 눌렸다.
내 순진하고 여린 간을 키워야 한다며, 결혼 후 남편은 나를 데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감독의 영화를 보러 갔다. 영화 이름이 '짝패'였던가. 한 편의 무협영화 같던 칼부림의 장면들을 견뎌내고 나온 나는 며칠을 앓았다. 세월이 흘러 수많은 일들을 겪다 보니 인간의 폭력성이 실제로는 더 잔혹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제는 영화의 장면을 장면 그대로 보아 낼 수는 있다. 하지만 허구가 아닌 실제 속에서 폭력에 눌리는 약자들은 여전히 존재할 것이기에, 그 피해자가 나의 자녀들이나 주변인, 또는 내가 될 수도 있는 것이기에 가끔 알 수 없는 저항감이 끓어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