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만 쉬어 갈게
엄마표 김밥을 먹고 싶다던 아들 녀석의 말에 마트 문이 열리기가 무섭게 장을 봐 와서 김밥을 쌌다. 새 학기 전 마지막 여유를 즐기며 베짱이 행세를 하고 있는 남자 넷을 배부르게 먹이고, 나는 집을 나와 버렸다. 어제 도서관에서 빌린 책 한 권과 공책 한 권을 가방에 챙겨 넣은 채로.
걸었다. 비가 올 것 같은 흐린 날의 기운을 한껏 느끼며 하천을 따라 걷는 길에는 사람들이 드문드문 산책을 하고 있었다. 벌써 쑥이 나왔나. 하천 주변에 쪼그리고 앉아 봄나물을 캐는 것처럼 보이는 세 명의 노인이 눈에 띄었다. 쑥향이 나는 것 같다. 한적한 카페 문을 열고 들어서니 주인이 심심하게 앉아 있다. 따뜻한 카푸치노 한잔을 주문해 2층으로 올라갔다. 아무도 없었다.
글을 쓰고 싶을 때마다 컴퓨터에 앉을 수 없어 늘 빈공책을 주변에 둔다. 봄빛이 가득한 새 공책을 올해의 글쓰기 노트로 정하고 며칠 전에 꺼내 두었는데 펼쳐보니 낙서가 가득하다. 무당벌레 하나, 수박 하나, 화산 하나, 가족의 모습... 한 바닥에 하나의 사물을 헤프게 그려댄 아이의 그림은 공책 여러 장에 이어져 있었다. 나만의 공간과 시간을 쓰려고 나온 이 시간에도 나는 결국 아이의 그림을 보며 키득댔다. 아마 나는 엄마가 된 이상 영원히 아이들을 나의 공간에서 끊어내지 못할 것 같다. 우리의 배꼽을 이어주던 탯줄은 끊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잠시 이렇게라도 거리를 두고 나의 시간과 장소를 비워두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같다. 카푸치노 한잔을 홀짝거리는 동안 나는 빌려온 책을 반이나 읽었다. 그리고 또 아이들에게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