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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다시 학교

소풍

현장체험학습 아니고 그냥 소풍 가고 싶다

by 꿈꾸는 momo

주문해 둔 김밥을 찾으러 아침 일찍 나섰다. 동학년 선생님들과 먹을 김밥을 사고 15,500원을 계산했다. 김밥봉지를 덜렁덜렁 들고 가면서 나는 어릴 적 엄마가 싸주신 담임 선생님 도시락을 떠올렸다. 내 도시락에는 없는 예쁜 색깔의 과일과 단정하게 쌓아 올린 김밥을 말이다. 그때, 선생님들은 참 좋겠다 그렇게 생각했다. 소풍 가는 날이 즐거워 일찍 눈이 떠지는 마음이 선생님에게도 있는 줄 알았다. 선생님도 공부 안 하고 노는 날인 줄 알았지. 가는 곳마다 아이들 수를 파악하고 사라진 아이를 찾아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는 긴장의 날인 줄 몰랐다. 멀미하는 아이, 다치는 아이, 싸우는 아이의 중재자가 되는 것은 덤이다. 간혹 학부모회가 있는 학교에서는 아이스박스에 담은 각종 음료와 분에 넘치는 음식들이 따라왔는데, 아이들 무리에서 나와 그것을 먹는 기분이란 돌을 씹는 느낌이었다. 그런 문화가 사라져서 좋다. 덜렁덜렁 김밥 한 줄 사 들고 가는 게 훨씬 맘 편하다.

간혹 아이들 중에는 엄마가 싸준 도시락을 먹다가 처치곤란 해 지면 들고 오는 경우도 있다. "배불러서 못 먹겠어요. 선생님 먹을래요?" "음... 아이야, 미안한데 다음엔 먹기 싫어서 주는 게 아니라 주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권하면 더 기분 좋겠다. 선생님도 배불러서 사양할게." 이렇게 또 가르쳐야 한다. 물론 "선생님 드세요"하며 미리 목캔디나 커피음료를 내미는 녀석들도 있다. 이런 것마저 단호하게 거절하시는 분도 봤지만, 난 아이들 맘 상할까 봐 고맙게 받아둔다. 교육을 하는 공간에 무슨 이리 법들이 많아졌는지, 언제 내 선의가 불의로 둔갑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곤 하며...

요즘은 소풍이라고 하지 않는다. 현장체험학습이라 한다. 너른 자연에서 도시락 까먹고 뛰어놀던 게 전부였던 게 소풍이라면 교육과정에 있는 '의미 있는' 현장을 답사하고 직접 체험하는 '학습'이다. 허용된 군것질과 뜀박질로 봄볕에 마냥 그을리던 예전의 소풍과는 달리 요즘에는 얼굴이 하얀 아이들을 데리고 다닌다.

우리 지역에 대해 배우고 있는 터라 지역의 중심지에 있는 도청과 그 옆에 있는 도의회를 견학하기로 했다. 건물만 둘러보는 것으로 끝나면 섭섭할까 봐 미리 도청과 도의회에 연락을 해서 해설과 안내를 부탁한 터였다. 오전에 과학체험관을 갔다가 가는 일정이라 생각보다 더 빡빡했다. 버스를 주차한 곳에서 내려 점심을 먹기로 한 공원까지 줄을 지어 십여분을 걸어야 했고, 갑자기 화장실이 급하다는 녀석을 데리고 근처 건물에 있는 화장실까지 다녀와야 했다. 우리는 일정에 쫓겨 도청 공원에서 돗자리를 펴고 앉아 점심을 먹은 지 30분 만에 정리를 하고 일어서야 했다. 약속시간에 아이들을 이끌고 가야 한다는 압박감과 간식을 못 먹었다는 아이들의 원성이 마음속에서 웅웅거렸다. 봄바람에 날아다니는 비닐팩과 돗자리를 못 접어 울상인 아이들을 쫓아다니느라 김밥은 한 줄도 다 못 먹고 명치쯤에서 걸렸다. 어떻게 하루를 보냈는지 모르겠다. 안내하시는 분들의 설명에는 안중에도 없이 자리를 이탈하여 장난을 치는 녀석들과 목마르다, 다리 아프다 성토하는 아이들 몇몇을 달래느라 신경이 예민해진다. 그냥 넓은 공원에 맘껏 뛰놀게 풀어놓는 게 아이들에게도 더 행복한 건 아닌지, 관람예절을 운운하며 끌고 다니던 내 목은 봄볕에 마른 것같이 폭 쉬어 버렸다. 나는 그냥 소풍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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