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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momo May 16. 2023

나에게 톡톡

내가 대견하다고 느껴질 때

  뒤척이다 일어났다. 새벽소리. 전자제품들이 돌아가는 소리가 조용한 공간에 가득하다. 윗집 아저씨의 기침 소리가 들린다. 거실에서 자나보다. 꺼지지 않는 상가 간판의 불빛에 거실 벽시계는 3시를 가리키고 있다. 얼마지 않아 아이소리가 들린다. "엄마, 무서워." 번득 잠이 깬 듯 청명한 막내의 목소리. 방문을 열고 내 존재를 알린다. 내게 안겨 이층 침대에서 내려온 아이를 내 자리에 눕힌다. 새근거리며 다시 잔다. 

  어제저녁의 아이를 떠올린다. 다부진 눈매와 말씨, 꽉 쥔 주먹. 아이는 욕심이 많다. 아빠가 던져준 소프트 볼을 제대로 맞추지 못한 아이는 방망이를 휙 던지고 아빠 탓을 하다 크게 혼이 났다.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힘을 주던 아이의 얼굴과 주먹이 기억난다. 머리를 쓰다듬고 이마에 입을 맞춘다. '얘, 너의 이름처럼 깨끗하게 살아. 주위를 청명하게 하는 사람이 되어. 욕심부리지 말고.'

  나에게 남은 시간을 계수할 수는 없지만 내 육체를 스멀스멀 점령하는 개운하지 않은 것들을 참아내며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는 나 자신이 문득 대견하다. 

  

  나를 대견하다고 생각해 본 적 얼마나 있을까. 제대로 가지지 못하고, 배우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은 늘 내 형편에 대한 피해의식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언제나 나를 부끄러워했다. 누군가의 칭찬이 내게 올 때도 상대를 머쓱하게 할 만큼 나를 부정하거나 피했다. 곧 별것 아닌 내가 드러날까 봐서다. 이제 좀 그런 마음에서 자유로와 지는지, 남들의 평가가 그리 중요하지 않다. 나이를 먹어서인가. 


  아이 셋이 돌아가며 아픈데도, 교실 아이들의 일상까지 챙기며 내 일을 꾸역꾸역 해내고 있는 내가 대견하다.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할 것들을 고민하고 준비하는 내가, 그러다가 집으로 오자마자 식구들의 먹거리와 아이들의 놀거리, 집안의 일거리의 경계를 넘나들며 움직이고 있는 내가. 톡톡 오늘은 나를 쓰다듬어준다. 잘 살고 있다. 잘하고 있다. 첫째가 뒤척이는 소리가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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