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에는 매월 둘째 주마다 열리는 알뜰 장터가 있다. 주민자치회에서 주최하는 이 행사에는 소박한 공연도 열리고 공공기관에서 준비한 체험행사도 군데군데 펼쳐진다. 무엇보다 지역 주민 누구나 물건을 사고팔 수 있는 돗자리 장터가 열리는 게 특징인데, 아이들이 주인이 되어 자기 물건을 팔고 용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오랫동안 열렸던 장터지만 직접 물건을 팔아보는 것은 오늘이 두 번째다.
아이들은 아침부터 알뜰장터 갈 준비에 바빴다. 더 이상 가지고 놀지 않는 장난감을 서랍 속에서 꺼내며 다시 옛 추억을 소환해 미소를 지었다. 장난감들은 지금에서야 다시 ‘새로운 것’이 되어 한차례 진득하니 놀 수 있는 거리가 된다. 이렇게 놀고 나야 미련이 없어진다. 그래도 미련이 남아있는 물건은 다시 자기 공간에 두고 나머지는 큰 가방에 차곡차곡 챙겨 담았다.
“이거 팔고 나서 새로운 장난감 사야지!”
세 아들은 자기 것을 팔아 새로운 것을 사 올 기대에 잔뜩 부풀어있었다. 장터가 열리는 공원으로 가보니 이미 판을 열고 손님을 기다리는 꼬마 사장님들이 많이 보인다. 세 아들은 깔아준 돗자리 위에 차곡차곡 물건을 진열하며 손님을 기다렸다. 이미 다른 가게의 물건에 눈을 빼앗긴 둥이들이 구경하자고 손을 잡아 끈다. 못 이긴 척 한 바퀴를 돌고 오는 동안에도 첫째는 자리를 뜨지 않고 비장한 눈빛으로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엄마, 아까 그 강아지 인형이 사고 싶은데, 먼저 사 주면 안 돼?" 한 녀석이 징징거리자 첫째가 끼어든다. "안돼. 우리 거 다 팔고 나서 살 수 있는 거야." 형의 단호한 한 마디에 녀석은 입을 삐죽이며 자리에 앉는다. 번 돈은 모두 판매자의 몫이고 그 안에서 지출도 자유라는 원칙을 이미 약속한 바 있었다. 다시 말해, 장터에서 번 돈이나 쓰는 돈에 대해서 엄마가 어떤 권리도 주장할 수 없다는 것이다. 관람객이 되기로 한 나는 모자를 푹 눌러쓴 채 한발 떨어져 앉아 모든 상황을 지켜보았다.
드디어 한 꼬마 숙녀가 아빠와 함께 쪼그리고 앉아 물건을 구경한다. 세 아들의 눈이 집중된다. "아빠, 포켓몬 카드랑 띠부실이 있어." 첫째의 것이다. "얼마예요?"가격을 묻는 아저씨, 그리고 "이건 천 원이고, 이건 오천 원이요."대답하는 아들. 나는 뒤에 앉아 모른 척 구경하면서 속으로 '저 띠부실 하나에 무슨 오천 원이나 부르지?' 생각한다. 하지만 흥정도 없이 그 자리에서 거래가 성사된다. 우와! 손님이 가고 나자마자 물었다. "뭐야? 그렇게 비싸게 파는데도 사간다고? " "아니야, 엄마. 포켓몬 카드는 만원 정도 거래되는 피카추이고, 띠부실은 엄청 귀한 거라서 오만 원 정도 하는 거야. 엄청 싸게 판 거지."
천오백짜리 빵 하나 사 먹으면 얻을 수 있는 띠부실 한 장의 몸값을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딸이 원하는 것에 흔쾌히 6000원을 꺼내 주는 아빠가 대단하다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꼬마 주인들의 가게는 죄다 그랬다. 조잡한 것들이 널려있는 꼬마 사장님들은 한결같이 비싼 가격을 붙여놓고 배짱 가득한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아예 물건을 팔 생각은 않고 휴대폰 게임에 빠져 있는 사장님도 보였다.
첫째는 처음 거래를 기뻐하며 동생들이 찜한 천 원짜리 인형을 기분 좋게 하나씩 사주었다. 둥이들은 자기들이 득템 한 인형에 미소를 날린다. 다음 손님을 기다리며 막대사탕을 하나씩 빨면서 "하늘 봐, 너무 파래. 이렇게 앉아 있으니까 꼭 소풍 온 것 같아." 한다. 아이들의 재잘거림을 지켜보던 아주머니 한분이 다가오신다. 아이들이 내놓은 물건들이 신기해서 구경하시나 보다 했다. "아끼던 물건일 텐데 팔아도 되는 거야?" "이건 뭐 하는 거야?" "이건 얼마야?" 관심이 많으셨다. 변신 조립 자동차의 주인인 둥이들은 작고 부끄러운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 "하나는 천 원이고 두 개 하면 이천 원이에요." 수세기에 한참 관심이 많은 한 녀석은 손가락으로 표시해 가며 설명을 한다. 두세 개씩 담아 천 원에 내놓은 자동차들 틈에서 오뚝이 세 개가 나오니 "어, 이건 너무 작은 거라서 100원만 주세요." 한다. 아주머니는 웃으셨다. 이렇게 팔아도 되는 거냐고... 그러면서 자동차 장난감을 15개나 담으셨다. "계산해 주세요~"세 아들은 대량 판매가 처음이라 당황했는지 하나 둘, 다시 수를 세고 만오천 원을 불렀다. 만오천 원이나 받아도 되는 건지 미안해하는 눈치였다. 직접 사주고 선물 받은 장난감들의 가치가 내 눈에는 더 받아도 될만한 것들이었는데 아이들은 뭘 또 하나 끼워준다. 웃긴다. 아주머니는 상담치료사라 하셨다. 아이들 상담을 하며 놀이를 할 때 필요한 피규어들을 여기서 구할 수 있어 너무 저렴하고 좋다 하셨다. 좋은 곳에 다시 쓰인다니 고맙고 기뻤다.
물건이 거의 동난 자리에서 다음 손님을 기다리는 건 지루했는지 아이들은 곧 정리를 하자고 했다. 우리가 정리하는 자리에 짐을 꺼내놓고 장사를 준비하는 꼬마 사장님도 있었다. 기타 연주가 울려 퍼지고 있는 공원 둘레를 한 바퀴 돌며 에코백도 꾸몄다. 첫째는 갖고 싶었던 가면을 천 원에 샀다며 기뻐했다. 줄공책 준비물이 있었는데 옆에 있던 줄공책 좀 사지 하는 말은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우리의 원칙이 있었으니까. 아이들의 즐거움을 존중한 하루, 하늘은 파랗고 그늘 아래 바람은 시원했다. 아이 말대로 소풍 같은 시간이었다. 집에 온 세 아들은 자신들이 팔고 남은 돈을 각자의 지갑에 챙겨 넣었다. 무슨 생각을 했을까, 갑자기 궁금하다. 내일 물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