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덟 살이다. 여덟 살이라는 사실은, 학교를 다니는 진짜 형아가 되었다는 말이기도 하지만, 아직은 아홉 살이 아니라서 귀여움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유치원에서는 제일 큰 형아였는데 학교에 가면 제일 어리다니, 왠지 작아진 기분이다. 화장실은 어디있을까. 공부는 어렵지 않을까. 밥은 얼마나 빨리 먹어야하는거지? 가슴이 콩닥거렸다. 그런데 왠걸, 초등학교에서 여덟살들은 병아리가 된다. 모두 반달눈으로 여덟 살들을 쳐다본다. 물론 담임선생님은 예외다. 처음 가는 방과 후 교실을 찾아 두리번거리고 있으면 알지도 못하는 누나들이 친절하게 길을 알려준다. 그게 다 여덟 살을 귀여워해서다. 나쁘지 않다.
집에서는 좀 다르다. 집에서 나는 형아다. 엄마가 차려놓은 밥을 먹고 양치를 한 후, 혼자 옷을 챙겨 입을 줄 아는 형아 말이다. 가끔 엄마가 아파서 누워있는 날엔 토스트 하나쯤은 혼자서 구워 먹을 줄도 안다. 기분이 내키는 날엔 냉장고에 있는 잼과 치즈를 꺼내 동생들 샌드위치 정도는 만들어 줄 수도 있다.
엄마는 여전히 나를 사랑하고, 안아주지만 엄마 품은 이제 내게 너무 좁다. 물론 쌍둥이 동생들보다 귀엽지 않다는 것도 안다. 그래서 엄마 품 안에 안겨 뽀뽀세례를 받는 동생들의 아침 인사는 모른 척해 준다. 동생들은 서로 엄마 품을 먼저 차지하려고 매일 아침마다 싸운다. 동생들이 우는 소리는 밤중에 요란하게 들리는 길고양이 울음소리보다도 시끄러워서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한다. 물론 울음소리와 상관없는 곳으로 가는 이유가 그 뿐만은 아니다. 동생들이 일어나기 전에 만든 레고 전투기를 내 방 전시장에 얼른 올려놓아야 한다. 나는 어렵고 멋진 걸 만들 수 있는데 그걸 보면 둘은 서로 가지고 싶다고 생떼를 부린다. 안 보이는 것이 최선이다. 그렇다고 내가 장난감 뺏기는 게 싫어서 동생들을 싫어하는 그런 쪼잔한 형은 아니다. 맘이 내키면 내가 만든 멋진 장난감을 줄 때도 있고, 만들어 달라고 하는 것도 만들어 준다. 어제는 내 지갑에 있는 4400원을 몽땅 털어 편의점 앞에서 동생들 뽑기까지 지불했다. 한마디로 나는 제법 멋진 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