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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momo Jul 26. 2024

무위도식

방학이다. 첫날을 의기양양하게 맞은 세 아들은 출근하는 아빠를 보며 새침을 떨었다.

"아빠, 나도 학교 가고 싶은데. 아빠는 급식 밥도 먹고 좋겠다."

학교 공사가 있어 돌봄, 방과 후 운영도 없는 바람에, 나는 오롯이 이 세 남자와 부대낀다. 태권도 학원이라도 하나 가보자 꼬셔도 어쩐 일인지 세 남자는 영 관심이 없다. 수영, 영어학원, 도서관 프로그램, 각종 체험기관도 알아봤지만, 억지로 등 떠밀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집에만 있다. 하루 중 도서관과 놀이터를 오가는 정도.


하루가 아주 느리게 간다. 그 와중에 삼시 세 끼는 성실하게도 다가오고, '간식'의 의미가 무색할 만큼 수시로 식욕을 채우는 아들들. 1학년인 둥이들은 처음 맞는 방학과제가 유의미한지, 갑자기 '운동'을 해야 한다며 1분 정도 몸을 움직이고는 방학생활 체크표에 동그라미를 치기도 한다. 알만한 4학년은 방학식날 가져온 방학과제표를 어디다 뒀는지도 모른다. 


게으르게 보이는 아이들의 생활이 그리 답답하지는 않다. 조금 늘어진 채 아이들과 뒹구는 시간이 그리 많이 남아있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에 나도 늘어진 채 산다. 쓰는데도, 읽는데도, 뭔가를 배우는데도. 그냥 느린 상태에 집중하고 있다. 얼마나 오래 갈지는 몰라도 말이다.  


창밖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며 옥수수가 익어가는 냄비에서 쒹쒹 거리는 소리를 듣는 오후. 애쓰지 않아도 계절은 바뀌고 나무가 자라듯, 무위도식 중에 커 가는 아이들을 바라본다. 에어컨도 틀지 않은 방 안에서 셋이서 무슨 놀이를 하는지 깔깔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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