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운동 시작은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시작해서는 좀처럼 타 종목으로 전향하기가 쉽지 않은게 운동의 섭리이다.
그러나 중학교 때까지 배드민턴 선수로서 순발력과 민첩성이 지구력과 어우러져 시너지 효과를 낸건지, 고1 때부터 운이 좋게도 서울시 대표로 선발되어 각종 전국대회에 대표로 출전하게 되었다.
고등학교 입학 후 첫 대회인 전국 경호역전마라톤대회 서울시 대표 선발전에서 15명을 선발하는데 12등으로 선발되어 3월 말에 있을 역전마라톤에 엉겁결에 참가하게 되었다.
막내로 선발되어 대회 내내 선배들의 뒤치닥거리만 했지만, 나에게 주어진 세 번의 경기에서는 1위는 못해도 1학년 치고는 선전했다고 감독님께서 칭찬을 해 주셨다. 그 대회의 일주일 참가가 내게는 큰 힘이 되었고 자신감을 가지는 계기가 되었다.
이것이 동기부여가 되어 5월에 전국체전 서울시 대표선수 선발전에서 당당하게 입상을 하여 고1 때부터 서울시 대표선수로 참가하게 되었다.
중학교 때 배드민턴 선수로 소년체전 서울시 대표로 선발되고도 나이가 오버되어 참가하지 못한 아쉬움을 고1 때 육상으로 떨쳐버릴 수 있었다.
고1 때 전국체전 선발은 꿈도 꿀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한 일이었다. 우리 학교만 해도 2학년 5명, 3학년 6명과, 1학년 4명 등 15명이 있었고 이렇게 다른 학교 선수들까지 하면 서울에서만 4~500여 명의 장거리 선수가 있었는데 그곳에서 1학년이 3위안에 들어가기는 하늘에 별따기만큼 힘들다고 한 것을 나는 해냈다. 단숨에 서울시에서 다크호스로 부상했다.
그러나 전국에는 잘 뛰는 선수들이 정말 수두룩 하게 많았다.
그렇게 대표선수들이 합동훈련을 하는 사이 어느 순간 일반인 선수들이 함께 운동하기 시작했다.
그 당시 올림픽을 유치하고 올림픽 홍보를 위해 딱 한번 엘리트 선수가 아닌 일반인을 대상으로 10km를 신설해서 각 시도 대표들이 겨루는 경기를 했었다.
당시 서울시에서 공고를 내서 여의도 수변마당에서 10km를 달렸는데 그때 선발된 일반인 선수들이 우리 서울시 대표팀에 합류해 함께 훈련을 했었다.
엘리트 선수들은 숙소 생활을 하니 운동 후에도 숙소에 있었지만 일반인들은 가정도 있고 직장도 있어니 오후 운동시간에만 와서 운동하고 돌아갔다.
남자 3명과 여자 3명으로 구성된 일반인 팀이었다.
그런데 여자선수들 세명중에 자매가 선발되어 훈련에 참가했는데 언니는 가정주부고, 동생은 미용실을 운영하는데 마라톤대회가 있어서 참가했는데 이렇게 선발되었다고 한다.
그때는 고1 때이니 그분들이 봤을 때 꼬맹이처럼 보였을 것이다.
매 운동 때마다 간식을 싸 와서 선수들을 먹였고 그 여섯 분의 일반인 선수들이 돈을 내서 선수들 고기도 먹이는 등 나름 열심히들 도움을 주셨다.
그러다 보니 자연 그분들과 가까워졌고 장난도 치고 함께 달려도 주고 매일 훈련은 힘들었지만 어른들과의 시간은 참 좋았다.
매주 토요일에는 외출을 줬는데 일요일에 숙소에 들어오면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여성분 중에서 나이가 가장 많은 어머니께서 토요일 운동 후 외출을 주면 자기에게 오라고 한다.
운동선수는 잘 먹어야 하는데 밥이라도 해주고 싶다고 한다. 다른 선수들도 아니고 혼자서 오라고 한다.
그런데 엄청 멀었다.
마포 대흥동에서 저 멀리 화계사 입구까지 오란다.
그분은 그곳에서 매일 운동하러 온단다.
그래서 토요일 훈련 후 버스를 장장 1시간 20분을 타고 또 두번을 갈아타고 화계사 입구까지 가서는 공중전화를 걸었다.
그랬더니 초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여자 꼬마애가 나와서 내 복장을 보더니 따라오란다. 화계사 옆 골목마을로 들어가는데 온통 점을 치거나 운세 등을 봐주는 점집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그중 한집으로 나를 데리고 들어가니 그곳에 같이 운동하시는 아주머니께서 나를 엄청 반겨 주신다.
솔직히 미신을 믿지 않으니 별 감정도 없었지만 막상 같이 운동하는 분을 그곳에서 만나니 기분이 묘했다.
그런데 거실에 들어가니 다른 여자분이 부엌에 있으면서 내 이름을 부르는데 보니 어라! 같이 운동하러 오시는 동생 분이었다. 너무 반가웠다. 어떻게 여기에 계시느냐고 물었더니 내가 온다고 해서 미리와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그곳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운동에 관한 대화가 이어지다가 들어올 때부터 궁금했던 질문을 했다.
근데 여긴 어느 분 집이에요? 그랬더니 큰 언니가 내 집이지 ㅎㅎㅎ
그러면서 자신은 점장이란다. 처음부터 점장이었던 게 아니라 신 내린 지 20년쯤 되었단다.
근데 같이 있던 동생도 신이 내렸단다. 지금 산아래에서 미용실을 운영하면서 점도 같이 보고 있단다.
그러면서 나의 장래를 봐주시겠다며 생일과 시를 물어보셨다.
부모님에 대해서 이것저것도 물어보시고 부모님 나이와 직업, 형제들까지 꼼꼼히도 물어봤다.
어린 마음에 그냥 물어보는 데로 대답했는데 언니나 동생이나 똑같이 내가 말하는 것을 듣고는 서로의 점괘가 어떻게 나왔는지는 몰라도 그냥 좋다고 한다.
앞으로 크게 되겠다.라고 한다. 운동만 열심히 하면 잘될 거다 라고 한다.
크게 믿지는 않았지만 기분이 좋다. 나쁘다 하는 것보다 좋다 하니 그냥 좋아졌다.
그날 고기를 엄청 먹었다.
내가 온다고 두 분이서 음식을 많이 준비해서 두 분과 여자 꼬마애 하고 넷이서 기분 좋게 많이 먹었다.
저녁때쯤 되어서 나왔다.
1시간 20분을 다시 숙소로 돌아올 생각 하니 망막했지만 그래도 배불리 밥 먹고 오니 좋았다.
그리고 또 한 달을 죽도록 훈련했다.
나는 아직 선배들 틈에 썩여서 따라만 가는 실력이었지만 속으로는 전국체전에 가서는 반드시 이기겠다. 다짐하면서 열심히 훈련했다. 그렇게 한 달 후 또 그 두 분이서 집에 놀러 오란다. 고기 사준단다.
그래서 안 간다고 했다. 너무 멀기도 하고 얻어먹으려니 부담도 된다 하니 괝잖단다.
돈 많이 버니 걱정 말고 오란다. 화계사까지 오지 말고 이번에는 동생네 미용실에서 보잔다.
그러면 20분 정도는 시간을 절약할 수 있을 거 같아서 알았다고 하고는 그 주 토요일에 또 찾아갔다.
이번에는 미용실로 갔는데 미용실 특유의 염색약 냄새가 많이 났다.
두 분이서 나를 반긴다.
그날도 고기도 먹고. 밥도 먹고. 간식까지 ~ 또 배불리 먹었다.
그리고 돌아왔다. 힘든 운동 얘기를 주로 했다.
어린 내가 할 수 있는 말이 별로 없었다.
그렇게 또 한 달이 지났는데 이번에는 두 분이서 아예 도시락을 싸오셨다.
운동 후 여의도로 가서 자리 깔고 앉아서 도시락을 먹었다.
그런데 문득 궁금증이 생겼다.
이분들이 왜 나에게 이렇게 잘해 주실까!
그래서 물어봤다. 저 말고도 다른 선수들도 많은데 왜 제게만 이렇게 고기도 사주시고 도시락도 싸오고 하세요?
그랬더니 이미 다른 선수들 하고도 한번씩 밥 먹고 고기도 먹고 했는데 이제부터는 나에게만 집중해서 후원을 하기로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솔직히 함께 합동 훈련하는 장거리 서울시 대표선수들 12명을 한 명씩 초대해서 생일을 알고 점을 쳐봤단다.
그런데 내 점이 가장 좋게 나왔단다.
그러면서 자신이 늦둥이 딸이 하나 있는데 나하고 천생연분이라고 한다.
그래서 지금부터 자신들이 나를 후원하기로 했다고 한다.
처음 화계사에 갔을 때 나온 꼬마가 6학년인데 나하고 딱 4살 차이고 둘의 점을 보니 이보다 더 좋은 궁합이 없더라는 것이다. 지금은 어려서 그렇지만 어른이 되면 나이차가 얼마 안 되고 궁합도 잘 맞고 천생연분이란다.
그리고 나의 미래가 밟다고 한다.
25세에서 30세 사이에 국가를 위해 일을 하겠고. 55세 이후 나이 들어도 다시 한번 좋은 일들이 생길 운명이라고 한다.
그래서 앞으로 나에게만 집중적으로 후원하기로 했으니 나는 자기들이 해주는 데로 먹고 열심히 운동만 하란다.
어쨌든 그때부터 수시로 그분들이 고기도 사주고 용돈도 주시고 했다. 그러면서 늘 농담 삼아 앞으로 사위가 될 사람이니 지금 투자한다고 생각하니 좋다고 한다.
어쨌든 이분들과의 인연이 10년은 갔다.
그분들 말대로 나는 승승장구했고 대구로 대학을 가기 전까지 정말 부모처럼 나를 후원해주셨다.
대학을 다니면서도 휴가를 받으면 꼭 서울에 올라와서 인사하러 들렸다.
그 꼬마 여자애도 어느덧 여고생이 되고 성숙되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런데 정말이지 그 여자애가 내 천생연분인지 늘 생각하게 되었고, 휴가를 받아가서는 꼭 그 애의 안부를 묻고 있었다.
내가 졸업하고 대학원에 입학할 때 그 애도 대학생이 되었고 대학교 진학 후 남자 친구도 생기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