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온도계
파견직 여사원이 회사에 있었던
3개월이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따스한 순간이라고 말한다.
자신의 회사를 바라볼때마다 잘되길 빌어준다고 한다.
지금 이 순간 짤려도 고맙다며 속삭인다.
회사를 다니는 동안 자신이 괜찮은 사람이였다는걸 느낄 수 있다며
나의 가슴을 짓누른다.
경직되 있던 그녀의 작은 입에서 나온 진심의 말은 나를 울렸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 나오는 장면이다.
드라마가 방영되는 3개월동안 나의 아저씨를 보는 순간 마다 황홀했다. 처음엔 그녀의 벼랑 끝 모습을 보며
내 모습을 애써 위로했다. 사소한 순간들이 파견직 여사원에겐 따스한 순간으로 자리 잡았다.
하루에도 꼭 한번은 들었던 "밥먹자"라는 말은 그녀에게 가장 따스한 순간으로 자리 잡았고,
사람냄새 가득했던 아저씨는 그녀의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엄청 괜찮은 사람이 되었다.
드라마는 해피엔딩으로 끝났다. 오랜만이였다.
사람으로서 드라마에 감동해본 것이.
낯설었다,
남자가 여자를 사랑하는 멜로보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멜로가 더욱 진할 수 있다는 걸 느끼게 해주었다.
멜로 먹는 남자.
두번째 이야기 내 생에 가장 따스한 순간.
쫙 달라붙은 청바지에 보일듯 말듯한 흰티를 입은 검은색 기다란 생머리 이상형이 지나갔을때 내 마음 17도 , 진희를 보고 첫눈에 반할때 35도, 무더운 여름 현재 32도 내 마음은 왜이리 심란한지도...
이렇듯 특별한 순간마다 온도를 매기는 습관이 생겼다.
수많은 온도들 중 나에게 가장 따스한 온도 역시 존재했다.
교내장학생으로 학교 장학팀에서 일 할 때였다. 학생들의 장학금 내역을 정리하는일과 복사 그리고 부서에 걸려오는 전화를 받는 일, 그리고 또 한가지 나이드신 어머니와 아버님들이 까다로운 장학 신청절차에 애를 먹어 자주 부서를 찾아오는데 어르신들을 전담마크하는게 업무시간의 절반이상을 차지했다.
그러던 어느 날 입구에서 부터 조심스럽게 걸어오는 나와 나이가 엇비슷해 보이는 남학생이 장학부서에 찾아왔다. 나를 찾아온 학생이 아니었기에 밀려있는 업무에 금방 눈을 돌렸기에,
그 학생의 불편함을 단번에 알아채지 못했다.
남학생 앞에 있던 선생님이 나를 조심스레 불러 학생을 강의실까지 데려다 달라고 부탁하였다. 차마 그 소리가 그 학생에 들릴까. 손짓과 고갯짓만으로 나와 선생님은소통하였다. 조심스러운 선생님의 행동에 그제서야 그 친구의 불편함을 눈치챘다. 자존심이 상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내 팔등에 친구의 팔을 올렸다.
나의 안내를 허락했는지 옷깃의 끝자락을 움켜쥐었을때 가슴 속 어딘가가 뜨거워졌다.
내가 한걸음 걸으면, 뒤늦게 한발자국 따라왔다. 매번 아무생각없이 걸었던 걸음, 걸음에 생각에 물들었고,
나의 두다리는 친구의 두 눈이 되었다. 계단 한 칸, 한 칸. 오르막길을 한 걸음 한 걸음..
앞만 보고 걸었던 나는 처음으로 뒤를 더 많이 바라보며 걸어갔다.
그 아이로서 나는 느꼈다. 내가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말이다.
적어도 그 친구에게만은 꽤 괜찮은 사람으로 남고 싶었기에 더욱 노력했다.
아주 잠깐이였다. 장학부서에서 강의실까지 10분 남짓한 시간동안 내가 아닌 그 친구만을 위해 온 힘을 쏟을때마음의 온도가 가장 따스한 순간은 내가 아닌 타인을 위해 노력하였을 때 느낄 수 있는 온도였다.
"감사합니다"
몸은 강의실에 도착했지만, 마음은 쉽게 돌아서지 않았다.
그 친구가 자리에 앉아 다른 학우들과 웃으며 인사하는 모습을 보니 그제서야 마음이 놓여 돌아설 수 있었다.
정말 사소했다.
일상 같은 걸음 속에 타인을 위한 마음 한스푼 얻으니
그 어느 순간보다 나는 따스해졌다.
계약직여사원에게 가장 따스한 순간이 아마도 나의 아저씨의 아저씨에게도 가장 따스한 순간이었을것이다.
나는 안다. 10분, 그 짧은 순간 그 친구에게 아저씨가 된 순간이 아직도 따스하니 말이다.
"그렇게 그 순간을 떠올리는 내 마음의 온도
너로 인해 여전히 지금까지도"
그 친구에게 이제는 내가 인사하고싶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