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들의 가을은 안녕하신가요?
멜로먹는 남자 네번째 이야기.
가을이 가을에게
말 한마디에 천냥 빛을 갚는다는 옛 속담, 말 따라서 천냥 빛을 갚은 사람 보다 이 속담을 뼈저리게 기억하는 사람은 아마도 담을 수 없는 말 때문에 큰 곤욕을 치른 사람일거에요. 사람이란 실수 뒤에 교훈을 얻고 성장하는 그런 존재라고 생각해서이지요.
셀 수없는 수많은 말 사이 제가 애정하는 단어가 한가지 있답니다. 바로 "그럼에도 불구하고"에요. 이 단어가 붙으면 지금까지의 이야기와는 다른 이야기 펼쳐지죠. 영화, 책, 드라마 또는 인생에서 말이죠. 옛날 옛적에 어떤 사람이 공부를하고 사랑을하고 취직을 하고 결혼을 하고 행복하게 삶을 마감했습니다라는 그저 평범한이야기보다, 우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에 열광한답니다.
온 몸이 스산히 떨리는게 누가 지나갔나 돌아보니 지나간 것들은 보이지 않고 어느 덧 가을이 찾아왔네요.
가을이 지나가면 여름이 그립고, 겨울이 지나가면 가을이 그립고, 추억 하나가 더 생겼네요. 어제의 여름이란 추억이 말이에요. 찾아온 가을이 조금은 두렵네요.작년의 가을이 사무쳤으니 말이에요.
안녕하세요. 저는 쿠도히나에요. 거기의 가을은 제가 있는 조선처럼 여전히 안녕한가요? 여전히 햇살은 뜨거운데 바람은시원한가요? 차디찬 길바닥을 낙엽이 덮어주고 있나요? 조선의 가을은 날이 더워 느끼지 못하던 포근함에 잠시 취해있답니다. 누군가 나를 꼭 껴안아 준것처럼. 그래서 가을이 그리움의 계절인가 봅니다.
제가 운영하고 있는 글로리 빈관에는 사랑이야기를 꽃피우고 있답니다. 매번 똑같은 사람들이, 비슷한 시간에, 쓰디쓴 가베를 마시고 있네요. 시간은 우리를 가만 두지 않고 격변하고 있다는데 어찌나 우리 빈관은 조용하고 평화로운지. 그런 날일수록 감정에 기대어 오늘을 지나치기도 괜찮을 것 같네요.
가을을 핑계삼아 빈관 밖에 나왔어요. 오늘은 사랑을 거닐까? 그리움에 돌아설까? 고민하다가 두 가지를 떨어뜨리기 안타까워 그리운 사랑에 대해 걸어보았네요. 바스락 바스락.. 바스락거리는 낙엽에는 저만의 사랑이 담겨있어요 그 사람도 조금은 나와 같았으면 좋았을 걸하니 가을이 원망스럽네요.
단군신화의 웅녀는 환웅을 잊지 못해 겨울마다 숨어서 잠을 잤을까요. 환웅을 보지 않기 위해, 웅녀는 참 멍청해요. 떠나간 사람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데 왜 그리 깊은 곳에 숨어서 눈마저 감은 채 잠을 청하는지. 아니면 그 해의 겨울을 통채로 떠올리기 위해 잠에 드시나, 어느 무엇이 되었든간에 멍청한건 똑같네요.
매년 비슷한 계절에 변하지 않은 나에게 지겨워서 사랑을 시작했어요. 사랑만이 조선처럼 저를 격변시킬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일거라 생각해서이죠. 그 사람을 좋아했어요. 가을였죠, 고인물처럼 고여있던 저에게 그 남자는 바다였어요. 고요한듯 하지만 쉴새없이 휘몰아 치는 바다말이에요. 그 모습에 저는 조금씩 물들었답니다.
403호 객잔에 머물던 그 남자는 어차피 지나갔을 계절처럼 지나갔어요. 잡으려고 손 내밀었는데 지나갔네요.
어디로 가는지 묻지 못했어.객잔을 운영하다보니 헤어짐에 익숙해져 아무렇지 않게 넘길 수 있을 것만 같았는데 그런 종류의 헤어짐과는 달랐나보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라도 생각나서 웃음짓네요.
거기의 가을은 안녕한가요? 여기의 가을은 안녕합니다. 여전히 종이를 넘기기 좋으며, 사랑에 빠지고 싶은 남자와 여자들이 가득 하답니다.올해는 애써 아무렇지 않게 넘기려고 했는데도, 실수처럼 생각나서 이렇게 쏟아냈네요. 오늘 하루만 져주려구요.가을이 시작됬으니 말이죠.
거기의 가을은 물들고 있나요? 조선의 가을은 여전히 물들고 있답니다. 어제의 초록이 오늘의 빨강으로 가슴 속 가득한 사랑이 여물어 세상이 노랑으로 뒤덮였네요. 그마저도 허락하지 않은 바람이 추억들을 휩쓸어 갔어요.이 몹쓸 바람같으니라고. 내년의 가을에 찾아온다는 약속하나 없었지만, 내년의 가을엔 새로운 추억을 품고 저에게로 떨어지겠죠.
가을 핑계삼아 무언가를 그리워하기 좋은계절 가을.
오늘 하루는 괜찮다고 토닥여주는 떨어지는 낙엽을 위로삼아 가을의 첫 날을 지나쳐 봅니다.
그래서인지 멀어질 올해의 가을이 벌써부터 그립네요.
손에서 떨어뜨리고 싶지 않을만큼 조선의 가을은 여전히 아름다우니..
안녕. 가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