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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솔 Jan 16. 2017

겨울 가천, 그리움

겨울치곤 다소 포근한 날 오후. 가슴을 열어젖히고 가천마을 아래 갯바위에서 고개를 든다. 망망대해다. 간혹 지나가는 컨테이너선과 유조선만 수평선 근처에서 가물가물하고 낚시꾼을 태운 배들만 한 두 척 오간다.

낮아지는 태양 아래 서쪽 바다는 황금 빛 물비늘로 일어난다. 한 줄기 명주바람이 물위를 달리며 길을 내고 이내 지워진다. 이 겨울 명주바람이란 표현이 적당할까? 하지만 이 시간만큼은 그 바람은 볼을 스치고 남색하늘을 휘감아 바다를 간질인다. 한 겨울속의 고요라서 더 운치가 있다.


답답할 때, 바다를 보지 않으면 미칠 것 같은 그리움이 편도선 부은 목에 침 삼키듯 묵묵한 아픔으로 묻어 날 때면 남면 가천을 한 바퀴 돈다. 남해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만 가지는 그리움이다. 그 그리움은 부나비 같이 수많은 생각의 잔상으로 일어나 심중에서 끊어지고 가슴을 찌르는 동통 회한의 칼날처럼 박혀든다. 차창 너머 야트막한 산을 본다. 청안하게 푸르던 잎 다 떨어뜨리고 앙상한 가지들만 남긴 채 침묵 속으로 들어간 겨울 산이다.

앵강고개를 너머 꼭두방을 돌아 해라우지마을 지난다. 중앙선도 없는 구불구불은 길은 삶의 연속된 변곡점이다. 그저 열심히 달려왔다는 그 자체에 감사를 하면 욕심이 줄어든 자화상을 볼 수 있다고 귀속말을 한다. 산허리를 뒤덮었던 콩과식물 칡 덩쿨은 앙상한 줄기만 남긴 채 침묵의 겨울색으로 섰다. 황톳빛 비탈 밭엔 모진 해풍에 몸을 납작 엎드린 시금치가 한기와 소금기가 녹색으로 피어나고 있다. 치맛단도 찢어갈 듯한 바람 속에 뿌리는 붉어지고 단만이 강해지는 시금치의 습성이 남해사람의 진한 맛을 그대로 전하고 있다. 

육조문 아래

육조문 아래다. 하늘을 머리에 인 바위 봉우리의 모습은 소원을 이루지 못하고 그대로 주저앉은 수도자의 그리움이 녹아 먼 하늘 빛 바다를 연모하고 있다. 그 마음을 대변하듯 실바람은 허공의 발부리에 넘어져 휘청거린다.

가천마을! 전기도 들어오지 않고 길도 없었을 때 고운자태를 뽐내던 새색시는 고개를 넘을 때 마다 한숨과 눈물을 얼마나 흘렸을까? 그 눈물과 한숨은 마을의 내를 이루어 바다를 향해 내달리는 가(加)천(川)을 이루었다. 해안을 끼고 있지만 태평양에서 몰려오는 거센 파도에 항구도 방파제도 없는 마을. 남정네들은 배를 타러 이웃 선구나 항촌마을로 갔다. 그래도 여의치 않아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먹고 살아야 되기에 산을 깎아 설흘산에서 돌을 날라 언덕을 쌓아 다랑논을 만들었다. 그 인고의 세월을 어찌 글 한 줄로 표현하랴.

해변으로 내려가는 샛길이 내리막이다. 경사가 심하고 저수시설도 없어 빗물은 본성으로 낮은 바다를 향해 미끄럼질 쳤다. 그래서인지 작은 개울의 하상은 빨랫돌을 깔아놓은 듯 맨들맨들하다.


지게길 바래길 안내문구가 보인다. 세상 많이 변했다. 먹고살기 위한 길이 트래킹이나 건강에 좋은 걷기로 현대인들에게 다가서 있다. 풍족하게 살고 있다는 증거이다. 

‘이보게 지게 한 번 져봤나? 어깨, 허리, 무릎에 오는 무게의 중압감을 아나?’ 구릿빛 보다 더 검은 얼굴, 깊이 팬 주름살, 앞니는 거의 없는 연세 많으신 촌부의 물음에 고개 못 드는 환각에 싸인다. 그 고통 누가 알까? 풍족과 풍요로움을 나무라듯 돌쩌귀처럼 단단하고 거친 손으로 바작대기를 쥔 목을 앞으로 숙이고 비탈길을 오르는 촌부의 고담함이 기억의 필름 속에 되살아난다.

포르릉 포르릉! 거센 해풍에 다른 날은 날갯짓하기도 싶지 않았을 참새들이 잔잔함을 봄날로 착각했든지 묵정밭 이곳저곳에서 날아오른다. 아마 가족들의 한 끼 식사를 위해 나왔을 것이다. 하루 종일 소금기 가득한 곳에서 무거운 날갯짓의 수고로움을 거절하지 않는 부지런함은 가천사람의 모습을 닮았다.

바다를 등지고 다시 오르막을 오른다. 아래에서 올려다본 다랑논들은 수직의 언덕위에 선 공중배미다. 저 논두렁에 지게를 지고 걸으면 얼마나 어지러울까? 아슬아슬한 기억의 두려움이 잔상처럼 베어온다. 하지만 아귀가 맞고 어느 한 곳 빈틈도 없이 돌로 쌓아올린 언덕의 기학적인 무늬를 보며 예술이 따로 없고 지금의 토목기술이 얼굴도 내밀지 못할 곳이 이것이 아닌가 한다. 오로지 경험과 몸의 부딪힘으로 만든 것이다. 하지만 중간 중간 묵혀 놓은 다랑논의 허물어진 언덕이 언제까지 이 마을의 명성을 보듬을지 안타까움으로 다가온다. 작은 다랑논과 눈높이를 맞춰본다. 눈을 멀리 하며 보이는 것은 하늘이고 바다요 등을 돌리면 언덕이요 산이다. 


시간은 흐른다. 잦아드는 황금색에 땅거미가 먹물을 푼다. 마을 안길은 벌써 어둑어둑해진다. 빈 집의 고요함을 고양이 한 마리 하품으로 좇고 바람만 애돌고 가는 긴 빨랫줄엔 갈무리 되는 도다리 물메기가 남해의 향취를 더한다. 아마 다가올 설을 기다리며 그 속에 그리움과 사랑이 농축되고 있으리라. 빈 마당가에 허락도 없이 선다. 나이 먹은 감나무가 갈라진 껍질에 옹이를 들어내고 있다. 세상살이 저 엄혹한 세월이 박아준 옹이의 길이와 넓이가 가천 사람의 본원이다. 

겨울 가천마을 그 속에 배인 삶은 아픔과 그리움으로 천지사방 갈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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