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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솔 Dec 27. 2016

남해마늘의 사연

"아이고! 허리도 아프고 무릎도 쑤시니 침 좀 빨리 주소. 오후에 마늘 다듬어야 하니까 얼른 좀 해 주소.” 마늘 캐기와 모내기 준비로 한창 바쁜 지난해 오월 말 VDT 증후군 치료를 위해 들른 의원에서 의사선생님과 촌 할머니가 주고받는 대화이다.

“할매! 한꺼번에 두 곳에 침을 못 맞으니까 오늘은 허리만 치료하고 가게!” 서툰 남해사투리로 의사 선생님이 일침을 놓는다. 그래도 할머니는 여전히 일기예보에서 비 온다 하였다며 마늘 비 맞히면 안 되니 속히 가야 한다고 통사정을 한다. 

진료실 한쪽에 마련된 물리치료실과 대기실에는 구릿빛보다 더 검게 그을려 주름진 얼굴에 환갑을 훨씬 넘긴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많이 기다리고 있다. 얼굴은 피곤함에 찌들려 웃음을 찾기란 어렵다. 어떤 분은 여기서 영양제 주사도 놔 주느냐고 묻는다. 이런 모습을 보며 젊은이인 자신의 몰골이 부끄러워 고개를 들지 못할 지경이었다.


지금 우리 농촌의 현실은 어디를 가든지 젊은이를 찾아보기가 어렵다. 특히 남해는 더 심하다. 그래서인지 골목에 아이들 뛰노는 모습은 가물에 콩 나듯 하며 마을에 아기 울음소리가 언제 들렸는지 기억하기도 어려운 현실이다. 그리고 각 면에 하나씩 있는 초등학교도 입학생이 없어서 앞으로 존재 여부가 불확실하다.

농사가 노인들의 몫이 된 지도 오래되었다. “늙어지고 심(힘)도 없어지는디 갈 곳은 한 곳 이제!” 담배를 끄집어내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우수에 젖게 한다. 


다른 지역과 달리 남해는 마늘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벼 수매도 양만큼 받아주지 않고 유일하게 몫 돈을 만질 수 있는 것이 마늘 농사이다. 모든 농사가 기계화되었다고 하지만 유달리 마늘 농사만은 손을 많이 빌려야 한다. 헤아려 보면 마늘 한 쪽을 심어 한 포기를 수확하기까지 무려 열 서너 번의 손이 간다고 한다. 그 중 제일 힘든 일이 마늘쫑 뽑기와 공판장에 출하하기 위하여 가위로 잔뿌리와 줄기를 자르고 다듬는 일이다. 똑같은 일을 반복하다 보니 어깨는 천근이고 목과 허리에 오는 통증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래서 찾는 곳이 한방 양방 할 것 없이 병 의원의 물리치료실이다. 특히 날씨가 궂을 때나 오일 장날이면 환자들로 넘쳐 난다.

아침 출근길 마늘 경매가 있는 날이면 빨간 망사 자루에 담은 마늘을 가득 싣고 경운기가 줄을 지어 가는 것을 본다. 최상품으로 팔려도 우리나라 유명한 기업에 다니는 사원의 한 달 월급도 될까 말까 하는데 그 돈으로 농협 빚 갚고 병원비하고 이런저런 명목으로 떼고 나면 손에 들어오는 것은 얼마나 될까? 가슴이 아프다. 마늘 때문에 골병든다고 하면서 정작 손을 놓을 수 없는 게 마늘 농사이다. 


읍내의 풍속도도 많이 바뀌었다. 수입이 짭짤한 직종이 예전엔 술집이라면 지금은 병 의원과 약국이 수지타산에 맞다 한다. 젊은 사람들은 외지로 빠져나가고 고향 지키는 사람은 연세 높으신 노인들이니 힘에 부친 농사일 마치고 나면 온 만신이 아파 전부 병 의원으로 달려가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한 가지 안타까운 일은 의사나 약사가 대부분 외지인이라는 것이다. 남해에서 출퇴근 가능한 도시에 거주지를 정하여 자녀 교육하고 남해에서 벌어들인 수입은 그곳에 투자된다는 것이다. 

“아이고, 의사양반 참 시원하네!” 치료를 마치고 안마기에 몸을 맞긴 할머니 한 분이 이야기를 한다. “돈이 들어가니 시원하지요.” 의사선생님은 농촌 노인들의 입담을 구수하게 받아준다.

머지않아 장마가 올 것이다. 또한, 마늘 농사로 아픈 몸 치료를 위하여 병원을 찾을 것이다. 회나 고기를 먹으러 음식점을 찾을 때 나오는 하얀 속살을 드러낸 생마늘을 볼 때면 자식들 외지로 다 떠나보내고 늙고 힘든 몸으로 농촌을 지키는 우리네 부모님의 손길이라는 것을 알면 좋겠다.

남해에서 생산된 마늘 한 톨에는 바닷바람과 땀방울, 우리 부모님들의 정성이 녹아 있다. 그래서 그 맛은 더 향기롭고 메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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