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을 꺼트린 완벽한 휴가
올여름 일본행 비행기 티켓은 나에게 청구서 같았다. 가지 말았어야 했다. 그게 게으름의 시작이자, 내 안의 단단하던 리듬에 균열이 가기 시작한 지점이었다.
그 무렵 나는 글에 조금 미쳐 있었다. 미쳤다는 말 말고는 적당한 단어를 찾기 어렵다. 아침 7시 50분부터 밤 11시까지, 하루의 모든 동선이 글을 향해 정렬되어 있었다. 글을 쓰기 위해 잤고, 쓰기 위해 먹었으며, 오직 쓰기 위해 살아 있었다.
브런치에 올릴 원고 여섯 편을 미리 쌓아두고, 다음 책의 목차를 구상하며 단편 소설 하나를 하루 만에 써내기도 했다. 그때는 글 쓰는 게 세상에서 제일 재밌었고, 그다음 재미있던 것은 책 읽기였다. 그 외의 것들은 전부 배경음 같은 소음일 뿐이었다. 무언가 시작하면 한 번은 활활 타오르는 시기가 오는데, 그때가 딱 그랬다. 억지로 불을 붙이지 않아도 혼자서 잘 타오르던 시기.
그런데 남자친구가 7월에 일본 여행을 가자고 했다. 처음엔 싫다고 했다. 그 뒤로도 몇 번을 더 거절했다. 나는 원래 여행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새로운 장소에 큰 관심이 없고, 왜 굳이 낯선 경험을 찾아 나서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다. 안 가본 게 아니라서 더 그렇다. 내게 여행이란 안전한 일상을 돈 주고 소란함과 바꾸는 일 같았다.
무엇보다 싫었던 건, 삼박 사일 동안 노트북을 열지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당시의 나는 강박에 가까울 정도로 몰입해 있었고, 여행은 휴식이 아니라 명백한 방해였다. 그래서 여행 가기 일주일 전까지 써야 할 것들을 미리 다 써버렸다. 마치 정전이 올 걸 알고 냉장고를 비워두는 사람처럼. 그러고는 스스로를 달랬다. "일단 멈추자. 다녀와서 다시 하면 돼."
여행은 좋았다. 완벽한 계획 덕분에 아무 걱정 없이 맛있는 음식을 먹고 근사한 풍경을 눈에 담았다. 비행기 값부터 호텔과 여행비용 전부, 그리고 쇼핑까지 내 돈은 한 푼도 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내게는 여행에 다녀오기 위해 양보한 기회비용 자체가 더 귀한 재화였다. 여행은 내가 정말 소중하게 여기던 감각들을 잊게 만들었다. 겨우 며칠 글을 쓰지 않았을 뿐인데, 다시 돌아왔을 때 나는 이미 그 세계에서 너무 멀리 와버린 기분이었다. 애써 키워온 뜨거운 불은 잠깐의 외출로 공기가 차단되자마자 허무하게 식어버렸다. 마치 누군가 스위치를 끄고 가버린 것처럼.
문제는 그렇게 멈춘 열정이 좀처럼 돌아오지 않았다는 데 있다. 꺼진 불은 생각보다 다시 켜기 어려웠다. 심지는 축축하게 젖어 있었고 성냥은 자꾸 미끄러졌다.
다시 생각해도 가지 말았어야 했다. 나는 그 여행을 가겠다고 한 걸 여전히 후회한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나는 마지막까지 안 간다고 말할 것이다. 분위기를 깨고 상대를 서운하게 만들더라도. 그때의 나에게는 지켜야 할 불꽃이 있었으니까.
나는 여전히 여행이 싫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내 리듬을 끊는 모든 것이 버거워졌다. 한 번 끊긴 호흡을 다시 맞추는 데는 너무 많은 시간이 걸리니까. 한 번 꺼진 열정은 다시 불 붙이기 힘드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