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강 과제 -정윤작가님의 소설기초반 -비유법에 대하여
"언니, 우리 팝콘 보러 갈까?"
"팝콘? 그게 먹는 거지. 보는 거야?"
"내가 정말 아름다운 팝콘 보여줄게. 오늘 밤에 같이 보러 가자."
내가 사는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일하는 소피아가 오늘따라 나를 조른다. 소피아는 평소 나와 가깝게 지내는 동생이기도 하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활짝 웃는 미소가 예쁜 소피아는 친구들하고 팝콘을 보러 가려고 하는데 꼭 나를 데려가고 싶다며 어깨를 좌우로 흔들며 입을 삐죽거린다.
소피아는 별을 팝콘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별과 팝콘이 뭔 상관이람. 나는 집 앞마당에서도 볼 수 있는 별을 보러 멀리까지 가자는 말에 살짝 망설였다. 아이들을 두고 밤늦게 나가려면 남편의 허락도 필요한데.
남편은 평소에 우리 가족과 잘 어울리던 소피아의 제안이라서 그런지 흔쾌히 나의 외출을 허락했다. 나는 영어공부하랴 아이들 픽업하랴 집안일 하랴 지칠대로 지쳐 물기 가득 찬 스펀지처럼 축 쳐진 몸을 마지못해 일으켜 소피아의 차에 몸을 싣고 반자이클리프(만세절벽)로 출발했다.
우리 가족은 20년 전 사이판에서 1년 살기를 했었다. 사이판은 섬 끝에서 끝까지 차로 20분 밖에 걸리지 않는 작은 섬이다. 사이판의 활주로는 바닷가로 뻗어있는데 길이가 너무 짧아 승객들이 무서워하기 때문에 밤에만 비행기가 뜨고 착륙한다는 소문이 돌 정도였다. 나는 이 아름다운 섬에서 갇혀 그렇게 1년을 보냈다. 그곳에서의 생활은 치열하게 살아온 한국에서의 삶을 느슨하게 만들었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여유 있고 내일이 걱정되지 않는 삶, 마치 긴 꿈을 꾸고 있는 듯한 삶, 그렇게 매일매일이 휴가였다.
하지만, 그날따라 하루 종일 정신없었던 내게 팝콘별을 보러 가자는 소피아의 제안이 그다지 끌리지 않았다. 그걸 보러 밤 12시가 다 된 늦은 시간에 차까지 타고 가야 하나 싶었다. 우리가 가는 반자이 클리프는 제2차 세계대전 말기인 1944년 사이판 전투에서 패배한 일본병사들이 천왕에 대한 충성심으로 만세를 부르며 떨어져 자살했다는 절벽이다. 그곳에 가면 그때 자살한 병사들의 위령비가 세워져 있다. 사실 밤늦게 그곳에 간다는 것 자체가 으스스한 느낌이었다.
반자이 클리프에 도착하니 주변에 불빛 하나 없어 마치 까만 공기 속에 서 있는 것 같았다. 바로 앞에 서 있는 사람조차도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주변은 캄캄했다. 함께 간 아이들이 핸드폰 플래시를 하나씩 켜기 시작했다. 나도 핸드폰 플래시를 켜고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돗자리를 깔았다. 누군가가 별은 누워서 봐야 한다고 해서 급하게 챙겨 온 돗자리였다.
그때 누군가 아이들에게 소리를 질렀다.
" 플래시 꺼!"
나와 소피아는 급히 플래시를 끄고 돗자리 위에 누웠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하늘의 별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마치 팝콘을 뿌려놓은 듯 크고 작은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나는 칠흑같이 까만 밤하늘 속에 박혀서 반짝이는 별들에 정신이 혼미해졌다. 태어나서 이렇게 큰 별들을 본 적이 없었다. 그렇게 환하게 반짝이는 별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집 앞에서 본 별들이 그냥 작고 하얀 점이었다면 이곳에서 본 별은 마치 수만 개의 팝콘을 흩뿌려놓은 파티 같았다.
불이 꺼져야 볼 수 있는 놀라운 광경이었다. 숨 죽여 하늘을 바라보는 내 가슴은 두근두근 고동치기 시작했다. 내 삶의 어두웠던 순간들이 스쳐 지나갔다. 그 시간들이 힘들었던 이유는 빛을 내려 안간힘을 썼기 때문일까. 가끔은 불을 끄고 세상을 바라보면 숨어있던 좋은 일들이 드러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때 갑자기 쓩하니 뭔가가 하늘에서 떨어졌다. 아이들이 소리쳤다.
"와~ 별똥별이 떨어진다~"
엉겁결에 떨어지는 별똥별을 놓쳐버렸다. 하지만 곧바로 다른 것들도 시간차를 두고 하늘에 쭉 선을 그으며 떨어지기 시작했다. 한 두개가 아니었다. 그렇게 많이 쏟아져도 괜찮을까 싶을 정도로 별똥별은 긴 화살을 아래로 내리 꽂듯이 우리 눈에 와 박혔다.
나는 넋이 나간 얼굴로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 어느 불꽃놀이보다 선명하고 화려했다. 캄캄한 공기 속을 관통하는 빛나는 팝콘쇼였다.
나는 지금도 팝콘을 볼 때마다 그 순간이 떠오른다. 지금은 언제 그런 시간이 있었냐는 듯 뿌연 기억이 되었지만, 불을 끄고 하늘을 바라보던 그 순간은 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휴가였다.